오랜만에 엄마를 만나고 남해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오랜만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평화로움은 잠시, 긴급한 상황이 펼쳐졌다. 동생보다 더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와 저녁 약속을 지키기 위해 휴게소를 들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함안 산인톨게이트를 지날 무렵, 동생이 외쳤다. "배가 터져버릴 것 같아!" 쉬 마려움이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운전을 하는 동생을 격려하며 빠르게 시내로 진입을 했다.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마침, 목표물이 보였다. 헬스장·한의원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었다. 터질 것 같은 아랫배를 부여잡고 동생이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잠시 후 울상을 지은 채 동생이 다시 돌아왔다.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래." 건물 수위가 화장실 사용 불가 방침을 내린 것이다. 저 너머 건물 밖으로까지 나와서 혹시나 다시 들어올까봐 가라는 손짓을 보내는 사람이 보였다. 60대 후반 혹은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노인이었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직 급한 불을 끄지 못했기에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하지만 지금도 그 노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화장실을 한 번 사용한다고 해서 피해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정이 급한 사람을 매몰차게 문전박대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야박하기 그지없는 심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걸까? 노인의 70인생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다녀왔다. 조문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특이하게도 상 위에 새조개가 올라와 있었다. 평소 너무 좋아하지만 비싸서 마음껏 먹지 못한 새조개가 반가웠다.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자신의 장례식을 찾은 분들에게 새조개 한 접시를 대접하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이 전해졌다.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마지막까지 타인을 배려할 수 있을까? 노인의 품격이 느껴졌다.

노인의 품격은 무엇인가? 요즘 종종 노인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안타깝게도 긍정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여유, 유머, 지혜, 예의, 너그러움과 같은 좋은 단어보다 불통, 꼰대, 이기적, 반말, 고집불통이라는 단어가 주를 이룬다. 다들 한 번씩 노인들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들을 늘어놓는다.

세월호 추모 배지를 말방에 달고 있는데 지팡이를 흔들며 부모 제사나 챙기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는 할아버지, 버스에서 자리를 비켜줬더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당연히 앉았다는 할머니, 식당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실수로 옷을 밟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퍼부었다는 할아버지, 박근혜가 불쌍하다며 눈물까지 훔치더라는 할머니, 노인과의 갈등을 겪은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끝이 없는 에피소드의 끝은 언제나 우리의 다짐으로 끝난다. "품격이 있는 노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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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이 있는 노인이 된다는 건 현재 나의 상태에선 어려운 목표다. 깡패 할매 혹은 버럭 할매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대비를 해야 한다. 품격을 갖추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을 웃기며, 젊은이들과 웃으며, 젊은이들의 웃음으로 활기를 찾는 노인, 그런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노인이 되고 싶다. 연륜에서 빚어진 지혜가 빛나는 노인,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노인으로 늙고 싶다. 노쇠함이 아닌 성숙함을 갖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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