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일기] (1화) 나는 이십대 중반 취업준비생입니다
평소 관심 있던 직종 인턴 합격
기쁨도 잠시 수많은 관문 남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
고민 끝에 다시 '취업 전쟁터'로

새 연재 '취준생 일기'의 주인공은 진주에 사는 이지훈(26) 씨입니다. 고단한 취업 전쟁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취업준비생이죠. 지훈 씨의 글은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보통 청춘의 모습이기도 하죠.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지훈 씨 글을 통해 취준생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함께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연재 중에 취업을 하면 바로 '사회 초년생 일기'로 바꿀 생각입니다.

/편집자 주

어릴 적 기대했던 스물여섯쯤의 내 모습은 분명히 이게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쏟아 부으면 10년, 20년 후를 기대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며, 많지는 않더라도 매일 알뜰하게 음식재료를 살 수 있는 월급을 받고, 계절에 걸맞은 옷을 사입으며, 늦은 저녁이 되면 나와 닮은 친구 두세 명과 동네에 모여 하루 일상에 대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이런 '반쯤' 어른이 된 모습이 내가 상상하고 기다려왔던 20대 중후반의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누군가에겐 사치일 수도 있는 이 모습이 나에겐 무척 중요했고, 내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였다.

나는 지금 취업전쟁국에 살고 있다. 이곳에선 매일 경신되는 천문학적 '실업 사상자'에 관한 지표와 이들의 '생사'를 누구보다 잘 책임질 수 있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말뿐인 말들이 '오늘의 날씨'보다 더 중요한 뉴스가 된다.

인턴으로 출근한 지 100일쯤 될 무렵, 지훈 씨는 불볕더위에 젖어 몸을 휘감던 정장을 벗어버렸다. 그는 제 발로 다시 전장에 뛰어든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어른들은 갓 성인이 된 '어른이'들이 이 전쟁 통에 살아남는 방법으로 다양성보다는 남들보다 더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공격성을 갖출 것을 권한다. '어른이'들은 비록 자기 자신을 알기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이 가진 무기의 크기를 재보려고 창문보다 작은 모니터 속에 '자기소개'를 수 없이 써내려간다. 이들은 자신을 밝히면 서로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면서도 어렵사리 꺼낸 짧은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취업'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오늘의 모습이다.

작년 여름.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정도 이 취업 전쟁과는 상관없이 '혼자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스스로 아직 내가 너무 어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 외에, 수학여행으로 갔던 여행지 말고, 부모님이 마련해준 원룸이 아닌 내가 꾸리는 어떤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 4년 내내 준비해왔던 직종에서 일자리가 났다. 궁금 반 진심 반에 '일단' 이라는 생각으로 서류를 넣어보았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가 마련해 준, 살면서 '만져보지도 못한' 돈으로 부랴부랴 생애 첫 정장을 매장에서 가장 좋은 옷으로 준비했다.

지난해 한 회사 인턴 면접을 보려고 생애 첫 정장을 산 후 기념으로 찍은 사진.

결과는 '최종합격'이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스물다섯 여름이었다.

이 취업전쟁국에서 조기 취업을 한 것은 상륙작전에 성공한 것만큼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한껏 들뜬 나는 취업이 된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내가 듣는 강의 교수님들께도 알렸다.

여태껏 취업을 '천천히 준비하라' 말했던 부모님은 '천만다행'이라며 몰래 곪아왔던 가슴을 쓸어내렸고 첫 월급을 받는 순간까지 들어갈 옷값과 차비, 식비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첫 직장'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순조로웠다. 적당한 실수와 적당한 칭찬. 스물다섯 '어린애'를 챙기는 직장 선배들. 업무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시간을 버리고서라도 알려주는 어른들이 고마웠다.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만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는 것이 즐거웠다. 점점 더 크고 작은 일을 해내면서 내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알아갔다.

동시에 마음도 아팠다. 주변에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말하던, 하지만 나로서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8개월 인턴'을 마쳐고서야 '될 가능성'이 있는 '3개월 수습'에서 살아남아야만 회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일명 '호모 인턴스'의 신세에선 내가 한 명의 어른이 된 모습은커녕 1년 뒤의 미래가 단 한 장면도 그려지지 않았다.

출근 100일쯤 될 무렵, 나는 불볕더위에 젖어 몸을 휘감던 정장을 벗어버렸다. '취업준비를 좀 해보고 싶다'는 신입의 황당한 폭로에도 선배들은 '인생 전체'를 주제로 한 경험담으로 내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점심때가 갓 지났지만 여전히 불이 꺼져있는 사무실 한편 소파에 앉아 나는 미안함과 불안감에 바닥으로 꺼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들의 첫 회사 생활이 어떤지 늘 궁금해 하던 부모님과 다음 월급 땐 더 맛있는 저녁을 사주기로 한 친구들, 아침잠에서 깨며 '이건 아닌데…'라며 되뇌던 내 모습이 끝없이 교차했다. 코스모스 졸업을 보름 앞둔 작년 8월 그렇게 나는 제 발로 다시 전장에 뛰어든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이지훈(취업준비생)

※지역민 참여 기획 '취준생 일기'와 '노순천의 무언우화'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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