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견학을 종종 간다. 날씨 좋은 봄날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눈에 선하다. 그런데 견학을 앞두고 유치원 소식지를 받을 때마다 편치 않은 마음이 든다. 준비물 탓이다. 꼭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준비하라고 해서다. 아마도 대부분 어머니가 아이 도시락을 준비할 테지만, '어머니'라는 말을 특정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내 반응이 과민하다 여길지 모르지만, 왠지 어머니에게만 그 일이 해당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이가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가 즐겨보는 공룡 캐릭터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노래 가사가 성별에 따라서 달라서다. 남자 캐릭터는 '용감하고 힘센', '척척박사 똑똑한', '날쌘돌이'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여자 는 '사랑스러운'이 수식어다. 로봇이 주인공인 다른 애니메이션 노랫말도 비슷하다. 남자 로봇은 '용감하고 빠르다', '강하다'라고 하고, 여자 로봇은 '상냥하고 따뜻하다'고 설명한다. '뽀로로'에서 남성 캐릭터는 6명이지만, 여성 캐릭터는 2명에 그친다. 그마저도 요리,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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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성 역할을 확산하고 성 차별하는 현실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다시, 여성주의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 치고 선에 힘이 있네', '여자치고 잘 그렸어', '작업이 너무 여성적이야'. 옆집 사람이 아니라 미술관 관장 등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성인 작가에게 한다는 말이다.

차별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고정관념, 편견을 바탕으로 한 '구분 짓기'에서 시작한다.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 구분 짓기에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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