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교대 열악한 환경 하소연 이해돼
산모의 몸과 마음 살피는 '둘라'

10%, 25%, 70%… 분만실 복도 전광판에는 빨간 숫자가 반짝인다. 산모와 남편을 애타게 하는 숫자, 바로 출산 진행률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은 "옆 산모는 아직 10%다"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두 번째 출산이라 일찍 낳을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며 병원으로 왔지만 막상 침대에 누우니 햄버거가 먹고 싶다. 아직 멀었다.

곧 산모의 3대 굴욕이라 일컫는 제모, 관장, 내진이 진행됐다. 이 모든 과정은 대부분 간호사가 도맡는다. 자궁문이 얼마큼 열렸는지 질에 손가락을 넣어 체크하는 내진은 맨정신으로 견디기 어렵다. 물론 내진하는 간호사도 거북스럽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정이 넘자 또 간호사가 바뀌었다. 야간조 간호사들이다. 새벽이 돼서야 아기가 밑으로 내려왔다고 신호를 보낸다. 바람을 가르고 분만실에 도착했지만 의사가 없다. 나는 의사가 오기 전에 혹여 아기가 나올까 봐 밑으로 쏠리는 힘을 억지로 참았다. 담당의사는 정말 아기가 나오기 직전에 왔다. 힘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힘이 주어졌다. 곧 울음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출산을 마친 후, 간호사는 다리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속옷을 입혀줬다. 하지만 주삿바늘을 잘못 찔러 계속 헤매고, 급하게 병실로 옮기며 링거를 떨어뜨리고, 산모패드를 거꾸로 채워줘서 피를 쏟았다. '대체 왜 이렇게 서툴지'라는 생각에 슬슬 짜증이 났다. 병실에 들른 다른 간호사에게 불만을 말했더니 "분만실이 조금 그래요"라는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이번에는 같은 병원에서 출산 경험이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저도 그랬어요. 종합병원 분만실 간호사들이 자주 바뀐다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거의 24시간을 진통하는 바람에 3교대 간호사와 모두 만날 수 있었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특히 야간조 간호사들의 눈은 유난히 충혈되어 있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3교대 하면 연애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같은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먹지 못하니 연애는 꿈도 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음과 비명이 연방 들리는 일터. 언제 아기가 태어날지 모를 응급상황은 매일 접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생하는 만큼 대우는 좋아야 할 텐데. 그것 또한 아니다.

촉진제 등 지나친 의술 개입이 없는 '자연주의 출산'에서 출산을 돕는 사람을 '둘라'라고 부른다. '둘라'는 산모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살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육체노동과 함께 감정노동을 한다. 산모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용기를 불어준다. 너무 겁이 난다며 하소연하는 내게 '잘할 수 있다'며 긴장을 푸는 마사지를 해주고 농담을 건넨 사람 역시 간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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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일은 분명 보람된 일이다. 하지만 분만실은 간호사들에게 빨리 떠나고 싶은 일터로 꼽힌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과연 직업적인 사명감과 봉사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출산 후 짜증을 냈던 내 모습이 머쓱해 분만실에 들러 간호사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함께 고생한 고마움의 작은 표시였다. 뒤돌아서 본 분만실 복도에는 여전히 출산진행률이 깜박였다. 새 생명의 탄생. 그 배경에는 밤낮을 잊은 간호사의 노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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