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입주자들 마을에서 일상처럼 활동
격리 공포 막기 위해 직원 개입 최소화

물론 처음엔 아래채에 내려가 계신 듯 짬날 때마다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살다 보니 그게 그리 녹록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달포를 넘기고서야 얼굴을 내밀어도 마치 조금 전까지 곁에 있었던 양 궂은 내색이 없었다. 점차 내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내가 나를 '나'라고 설명하면 새삼스럽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바라봐 외려 나를 멀뚱하게 했다. 으레 좋아하던 젤리를 오물거리다 요구르트 한 모금을 빨고는 노래를 불렀다. 남인수 고복수 이난영 그리고 '아메요 후레후레'로 시작되는 일본노래와 아버지 십팔번인 '으악새'까지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던 엄마였던지라 꼬맹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그 노래들을 우리는 함께 불렀다. 망각이 단지 잊는 것이 아니라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함으로써 기억을 통제하는 것이라면 엄마는 성공적 망각에 도달한 것 같았다. 아버지와의 고난에 찬 역정이나 먼저 보낸 큰아들에 대한 참척의 통증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는 자기 인생의 빛나는 순간만 기억하는 듯했다. 엄마의 경우만 본다면 '치매'라는 질환은 실로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그 험난한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오며 겪었던 여정에서 '기뻤던 순간'만을 회억한다는 것이 죽음의 문턱에 선 그이에게 축복이 아니면 무엇인가 말이다.

그러나 치매가 다 그러랴. 그 요양원 병동에는 다양한 유형의 망각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간호사실이 있고 가족관계 확인 등의 간단한 절차를 마치면 치매 병동에 들어서는데 그 경계에 육중한 창살 문이 있다. 그 창살은 '망실'과 '현실'을 가르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신작로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오부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가로질러 30m 남짓한 병동 복도를 종일 오가며 지나는 이마다 붙들고 같은 대사를 읊고 있는 여든일곱 '남사댁'의 유일한 목표는 '집'으로 가는 것이다. 계단으로 통하는 자동 잠김 문 앞에 앉아 문이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아흔셋의 기골 장대한 노인 또한 그 문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치매'에 이른 어버이의 봉양문제로 파탄지경에 이른 단위가정을 위해 요양비용을 보조하는 복지정책은 모처럼 '국가'의 존재를 실감 나게 했다. 이제 시책 초기의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요양원에 그들 '망실' 선배들의 여생이 '격리 수용'되는 것을 넘어서는 꿈을 꿔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늘어난 수명을 주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북유럽'은 본받고 싶은 영양가 있는 선배다. 참으로 부럽길래 옮겨본다.

네덜란드가 운영 중인 치매마을 '호그벡(Hogeweyk)'은 4500여 평의 땅에 네모지게 지어졌더라.(크기가 가늠되지 않아 뒤져보니 얼마 전 진주에 들어선 '롯데몰'과 비등하다) 이 마을엔 극장과 커피숍은 물론, 슈퍼마켓·음식점·공원·복지관·미용실 등이 있다. 입주자들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흰 가운의 환자복을 입은 감시 대상의 환자가 아니다. 여느 마을의 일상과 같이 농장에서 채소를 가꿀 수 있고, 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도 있다. 다른 입주자들과 공방에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다. 보조간병인을 비롯한 직원의 개입은 최소화한다. 시설에서 입주자들이 길을 잃거나 혼란을 느낄 경우에만 개입하는 것이다. 입주자의 요구에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볼 때 간병인은 다만 친구로서 동반자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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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들이 사회 속에서 개인 단위로 격리당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근심, 분노, 공포, 우울증은 엄청날 것이란 분석이다. 유난히 늘어나는 추세가 가파르다는 우리나라는 지금 70만 명 남짓이 치매를 앓고 있다 한다. 기왕에 갖춰져 추진되고 있는 노인대상 국가보조금 운용의 실태를 되짚어보고 '호그벡'의 사례가 참조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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