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 큰 울림, 저금통 끼끼의 모험]마지막 이야기-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삶의 변화'결심한 황용운 씨
연고 없는 제주도로 건너가 기억공간 만들어
고동성 씨에 용기와 희망 메시지 전하기도
각자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 만드는 힘 보태

지난 1월 31일 창원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고동성(44) 씨가 좋은 곳에 기부해 달라며 경남도민일보에 토끼 모양 저금통을 성금으로 맡겼습니다. 고 씨는 원래 이 저금통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주고 싶었지만 생업이 바빠 그러지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러면 제가 직접 팽목항 유가족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금통을 데리고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도 가고, 단원고가 있는 안산도 가보자고 생각하면서 이 저금통 끼끼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제 그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31일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날입니다. 지난 기사에서 끼끼와 함께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찾은 이야기는 했었지요. 사실 이날 목포신항에도 갔었습니다. 철조망 너머로 가만히 드러누운 세월호는 노을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욱 쓸쓸해보였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유가족 천막에는 물론 안산에서 끼끼를 만난 적이 있는 분도 계실 테지요. 하지만, 굳이 끼끼를 유가족 천막으로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세월호를 직접 보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여기에 유가족까지 만나게 되면 그 무거움을 더욱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해 저문 목포신항을 되돌아 나오며 끼끼와 같은 작은 마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에 간 끼끼.

장면은 다시 지난 2월 제주도로 돌아갑니다.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 그래서 끼끼를 데리고 가장 먼저 찾았던 곳입니다. 무턱대고 걸었던 올레 14코스에서 우연히 만난 세월호 기억들과 제주 시내 커피동굴이란 카페에서 만난 커피여행자 이담 씨의 세월호 이야기는 앞서 소개를 했었고요. 당시 커피동굴 지킴이 두정학 씨가 소개해 준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일이라면 이곳을 꼭 찾아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끼끼와 저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기억공간 리본(re:born)'을 찾아갑니다. 공간을 만들고 꾸려가는 이는 황용운(37) 씨입니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아름다운 가게 활동가로 일했다는군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 뒤인 2014년 5월 18일 당시 서울에서 대규모 추모 집회가 벌어졌는데, 이날 많은 참석자가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황 씨도 그중 한 명이었고요. 유치장에서 보낸 이틀동안 한 고민이 이후 황 씨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기보다 무언가를 해야겠더라고요. 사람들이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 그러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에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기억공간 리본을 만들고 운영하는 황용운 씨.

그래서 그는 지난 2015년 2월, 전혀 연고가 없던 제주도에 왔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퇴직금이 가진 전부였고요. 땅값이 비싼 제주도에서 공간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요. "제주도에 작은 도서관을 준비하던 어떤 형을 만났어요. 굳이 독립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제안해서 이곳에다 기억공간을 열었어요."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에 맞춰 기억공간 리본이 태어났습니다. 리본이란 말에는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 기억이 개개인을 통해 희망으로 다시(re) 태어나길(born) 바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기억공간 리본에서는 세월호 관련 전시나 활동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시까지는 안산 기억저장소와 공동으로 진행했고요. 이후부터는 제주에 있는 작가나 일반인들의 세월호를 기억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전시를 하고 있답니다.

뒷집 할머니가 쓰던 외양간을 고친 기억공간 리본.

세월호 이야기라고 분위기가 무겁거나 엄숙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추모가 아닌 기억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기도 합니다. 기억공간 건물은 원래 뒷집 할머니가 소를 키우던 곳이었다네요. 내부를 외양간 모양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을 꾸몄고요. 바람도서관을 겸하고 있기에 마을 분들이 편하게 와서 책을 보기도 한답니다. 기억공간 리본은 이번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해 15, 16일 세화오일장 등 제주 곳곳에서 세월호 기억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기사를 봤는데 감동이더라고요." 기억공간으로 가기 전 황용운 씨에게 미리 끼끼 첫 기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기사를 공유했다더군요. 그래서 고동성 씨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제주도로 간다고 하니 당시 친구들은 계속 '오버하지 마라, 가서 뭐 먹고살래' 그러면서 말렸어요. 물론 아끼는 마음에 걱정이 돼서 그런 말들을 했겠지요.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준 게 있어요. 우리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만 살다가 죽겠구나, 그게 또 잘 죽는 게 아니라 되게 비참하게 죽겠구나 하는 거죠. 고동성 씨가 끼끼 같은 마음을 모으신 거는 생각한 대로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신 거예요. 우리 함께 걷는 이 걸음 더 단단하게 같이 걸어갑시다. 응원 드립니다."

지난 14일 끼끼는 고동성 씨 품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끼끼 뒷면에는 황 씨와 세월호 유가족을 대표해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이 적은 감사 글귀가 보태졌습니다. 고 씨는 황 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황용운 씨 같은 분들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메시지까지 보내주셔서 저에게 굉장히 힘이 됩니다. 세월호 참사로 같이 아파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공감해 줄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거 잊지 마시고, 용기를 내서 같이 좋은 세상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 택시기사 고동성 씨 품으로 돌아간 끼끼.

그리고 고 씨는 끼끼에 모았던 옛 100원 동전들을 모두 황 씨에게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작고 약한 인간들이니까요. 황용운 씨도, 고동성 씨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만들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작은 저금통 끼끼는 이런 소박한 고민들을 상징합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가치관이나 고민도 다르겠지만, 이런 뜻에서 우리는 결국 함께 걷고 있습니다. 끼끼 같은 마음들을 품고서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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