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진달래 정원 거제 대금산
중봉·한려수도 품은경남의 '진달래 명소'해발
438m 낮은 고도에도설화 얽힌 인물사 '가득' 10만㎡ '환상'진달래 군락환경보전 가치 일깨우기도거
가대교·망망대해 한눈에시원하게 펼쳐진 산·바다속세에 찌든 마음 씻어줘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추위와 싸우며 올랐던 산에 하나둘 초록이 움트더니 이제는 꽃이 온통 뒤덮어 버렸다.

매화, 산수유, 벚꽃, 유채와 함께 봄의 전령으로 상징되는 꽃이 진달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생명력 또한 강하기 때문이다. 해방을 꿈꾸던 일제 강점기에는 '선구자'로 상징되기도 했고 비바람과 때늦은 봄눈에 떨어진 꽃잎은 선구자의 수난으로 표현됐다.

'퇴색한 민주주의, 후퇴한 역사'를 바로잡고자 지난해 추운 겨울을 견뎌낸 오늘날 우리에게도 봄의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올해 진달래는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경남에서 진달래로 유명한 산은 창원 천주산과 무학산, 사천 와룡산, 창녕 화왕산, 거제 대금산 등이 꼽힌다. 그중에서도 대금산은 가장 빨리 꽃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을 가지고 있어 더 이름 높다.

◇비단을 두른 산

대금산(大錦山·438m)은 거제 장목면과 연초면에 걸쳐 있다. 거제에는 5대 주산이 오행에 맞춰 놓은 듯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는데 대금산은 북쪽을 대표하는 거제의 북악(北岳)으로 일컫는다.

오르는 길이 수월하고 해발고도가 438m밖에 되지 않아 낮게 느껴지지만 정상에 서면 다르다. 중봉과 시루봉이 발아래 있고 바로 옆에 바다가 펼쳐져 있어 우뚝 솟아 드높아 보인다.

대금산은 기록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쇠를 생산한 곳이라 하여 대금(大金)산이라 했다.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대금(大錦)으로 바꿔 불렀다. 산세가 온화하고 정상 주변에 봄에는 진달래가, 여름에는 낮은 초목이 비단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름 변천에 얽힌 설화도 전해진다.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지만 유명한 풍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쇠 금(金) 자를 비단 금(錦)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쇠 금을 사용하면 쇠의 성격처럼 강하고 거친 인재가 나지만 비단 금을 사용하면 더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날 것이라 예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대금산 자락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났고, 이 밖에도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원 등 유명 인사가 많이 배출됐다고 설화와 연결해 이야기한다.

대금산 정상 아래 중봉 또는 중금산으로 불리는 봉우리에는 조선 말기에 쌓은 중금산성이 있다. 산성은 대금, 율천, 시방 등 인근 3개 마을 주민이 왜구 침입에 대비하고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는 기우제를 올리던 제단과 약수터가 있다.

거제 대금산 활짝 핀 진달래 속에서 산객들이 봄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유은상 기자 yes@idomin.com

◇배려심 깊은 꽃

진달래 군락은 대금산 7∼8분 능선에 있다. 지천으로 핀 진달래를 보면 '비단을 두른 산'으로 바꾼 연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환상적인 풍경은 착시현상으로 이어진다. 진분홍 진달래 물결은 붉은 마그마로 변해 산 아래로 천천히 타고 내린다.

대금산 진달래는 3∼5m 높이로 자라 있어 산 정상에 오르려면 꽃 터널을 지나야 한다. 이 또한 도열한 호위병의 열병식을 받는 듯 색다른 경험이다. 가까이서 본 진달래는 오롯이 분홍색이 아니라 보라색도 약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진달래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매화, 산수유, 벚꽃, 유채꽃 등은 흔하게 접하지만 진달래를 보는 일은 예전처럼 쉽지 않다. 도심에서 다소 벗어나거나 산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다른 꽃은 정원수나 가로수로 인기를 얻으며 확산했지만 진달래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생명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여리고 배려심이 깊다. 혼자 지내기보다 군락을 이루며 자신보다 키가 큰 나무들이 들어서면 어느샌가 자리를 내주고 홀연히 떠난다.

대금산 진달래 터널.

정확히 말하면 진달래가 흔했던 것은 근대화 과정에 산이 황폐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림녹화가 성공하면서 진달래는 다른 초목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대금산 진달래 군락도 점차 그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1997년 진달래 축제를 시작할 때 10만 4000㎡에 가까웠던 면적은 이제 10만㎡ 정도라고 한다. 특히 대금산 진달래는 산림녹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훼손에 의한 것이라 더 안타깝다.

수많은 사람이 산을 누비면서 진달래 군락은 듬성듬성해졌고 등산로는 차량이 다녀도 될 정도로 넓고 반들반들해졌다. 물론 휴식년제도 시행하고 훼손이 심한 곳에는 다시 나무를 심었지만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더 오래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려면 등산객의 각성이 절실하다.

◇바다 경치도 일품

'2017 대금산 진달래 축제'는 지난 주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굳이 진달래 철이 아니어도 대금산을 찾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른 진달래 명승지와 달리 대금산은 바다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고 접근성 또한 뛰어나다.

정상에 서면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해안선이 발아래 와 닿는다. 흥남해수욕장으로 쉼 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에메랄드 물결은 작은 파도소리로 전해지는 듯하다.

시선을 더 멀리 옮기면 분홍색 진달래와 대조를 이룬 망망대해의 푸른빛이 찌든 눈을 씻어 낸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고개를 돌리면 멀리 거가대교가 미니어처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그 왼쪽으로 진해와 마산이, 오른쪽으로 가덕도와 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대금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와 거가대교,

반대 방향을 향하면 이번에는 겹겹이 층을 이룬 옥녀봉과 국사봉, 계룡산, 산방산 산그리메가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늦가을이면 시루봉에 출렁이는 억새 물결도 일품이다. 대금산 등산로는 대략 다섯 가지 정도다. 반깨(율천)고개, 절골마을, 명상마을, 상포마을, 정골마을을 기점으로 오르는 길이다. 반깨고개에서 오르는 길이 1.6㎞로 1시간이면 정상에 닿는다. 다른 코스도 쉬엄쉬엄 2시간이면 가능하다.

특히 거가대교가 뚫리면서 대금산은 더 가까워졌다. 예전에는 창원, 김해, 부산 등에서 오려면 통영 쪽으로 둘러야 해 만만찮은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남, 부산 어디서 오든 하루면 충분하다.

겹겹이 층을 이룬 옥녀봉과 국사봉, 계룡산, 산방산 산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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