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화가·애호가 이야기 다채
우리나라 미술사 관심 유도해
서양화 위주 환경 돌아볼 계기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에 거문고 연주를 잘 하는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표현하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어느 날 종자기가 죽었고,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지음(知音)' 또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이야기다.

<안목>. 볕이 잘 드는 봄날 창원시 사파동 어느 예쁜 공간에 남자 둘 여자 셋, 이렇게 다섯이 모였다. 유홍준의 책 <안목>을 읽고 각자가 느낀 '안목'을 나누기 위해서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연합뉴스

p12. '미美를 보는 눈을 우리는 안목이라고 한다. 안목이 높다는 것은 미적 가치를 감별하는 눈이 뛰어남을 말한다. 안목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미와 예술의 세계가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적 형식의 틀을 갖춘 작품을 두고서는 안목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작품 앞에서는 안목의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1부 '안목'이라는 주제 글을 시작하면서 한국화라고 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인상의 '설송도'를 내보인다. 영조 때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의 그림과 글씨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일반인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설송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는 것은 능호관의 그림을 볼 줄 아는 당대의 안목이 있었다는 것이다.

명작이 그 자체로 훌륭하여 만인의 눈을 충족시켜 명작인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알아봐 주는 '안목'이 있어 명작이 된 것인지 어느 한쪽으로 몰아붙일 수 없다. 물론 전자는 고민할 거리가 안 된다.

그러나 보편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뛰어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명작들을 생각하면 미술관에서 내가 이해를 못해 한참을 멀뚱거린 작품에 미안해진다.

p137. '"~그러므로 그림의 묘미는 잘 안다는 데 있으며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한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문에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을 끌어 썼다고 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었다.'

우리가 예술 작품 감상을 논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들먹이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의 유래는 석농 김광국의 서화 수집품 <석농화원>에 동시대 문인 유한준이 붙인 발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인용해 너도나도 입버릇처럼 읊었고 책의 인기만큼 널리 퍼졌다.

이 책의 2부 '애호가 열전'은 그렇게 작품에 눈뜨고 예술 작품을 모은 사람들 이야기다. 우리나라 수장가들은 신분도 다양하고 후세에 받는 그들의 평가도 다양하다. 친일파도 있고 소장품을 한꺼번에 팔아 이득을 취한 경우도 있다. 우리가 흔히 빠질 수 있는 민족문화의 수호자라는 기존 인식을 모든 수장가에게 줄 수 없다.

3부 회고전 순례와 4부 평론을 이야기하면서 명작과 화가 그리고 좋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모인 다섯 명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자 반성이 아직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서양미술 작품들보다 우리 미술 이야기가 이렇게 낯설 줄 몰랐다.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 스스로 부끄러웠다."

320쪽, 눌와, 2만 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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