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 속 꿈 심어주고파
좋아하는 커피 가게 직접 열어
돈도 벌고 틈틈이 멘토로 활동

창원 마산야구장 동문에서 육호광장 쪽으로 50m쯤 걸어가면 '내꺼'라는 독특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카페가 있다.

"내가 마시는 것처럼 커피를 만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카페 주인 이루다(30) 씨의 말이다. 가게 이름처럼 주인장 이름도 독특하다. 3년 전에 개명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지어주셨어요.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되라고. 그분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개명하기 전에도 일을 하면서 '이루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말을 하는데 경상도 억양이 희미하다. 그럴 것이 이 씨는 인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족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마산으로 이사를 왔단다. 마산에서 중학교를 나온 그는 전북 전주에서 예술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충남 천안에서 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연예기획사에 취직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다 7년 전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다.

커피 가게를 운영하는 이루다 씨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강해중 기자

◇인생의 전환점을 맞다 = 마산으로 돌아온 이 씨는 지인의 권유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강의를 시작했다. 주로 연예인이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관련 지식과 꿈, 비전 등을 전했다.

"처음 강의를 한 곳이 창원 신월중학교였어요. 그때 만난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제 속에 있던 열정도 다시 느껴졌고요."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던 이 씨의 삶에 전환점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연 한부모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무척 조심스러웠어요. 아이들의 첫 느낌이 눈치를 많이 보고, 자존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져 보였어요. 그런데 한 시간 강의하는 동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을 보니 '충분히 사랑받을 아이들인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씨는 좀더 전문적으로 이들을 돕고자 청소년지도사 공부를 하고 있다.

"한부모가정 아이들은 부모님이 어색하대요. 서로 대화할 시간이 부족해서겠죠. 그 친구들과 주말이나 방학기간에 하루쯤 시간을 내서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요. 저도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때 어딜 가본 기억이 없어요. 이 친구들에게 추억을 심어주고 싶어요."

이 씨가 카페를 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느 정도 수입도 있어야 하고, 일단 시간 제약에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카페를 열게 됐죠."

이 씨는 지금도 쉬는 날 등 시간이 날 때 짬짬이 한부모가정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어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커피 없인 못 살아 = 이 씨는 커피 마니아다. 20대 초반부터 커피를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친구들은 돈 주고 사약을 먹는다고 하는데 제게 커피는 '박카스'였어요. 커피를 마시면 피로가 풀려요."

이 씨는 커피를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를 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1년간 학원을 다니고, 국내 유명 카페를 섭렵했다. 일본과 대만에도 다녀왔다. 그러다 위가 상했다.

"위궤양이 심각했어요. 위암 직전까지 갔어요. 수술을 했는데 10분의 1만 남기고 위를 잘라냈어요. 그땐 요구르트 한 병이 한 끼 식사였어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어요. 의사 선생님께 술, 매운 거 짠 거 안 먹겠다. 그러나 커피는 꼭 마셔야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약을 한 뭉치 처방해주시며 허락하더군요."

이 씨는 '내꺼'를 열면서 누구나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커피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개업한 지 1년이 됐다.

"어머니가 '아끼면 똥 된다', '퍼주면 (사람들이)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가게 이름도 네 것 만드는 것처럼 만들라고 지어주셨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원두, 더 좋은 재료를 써요. 그 덕에 1년을 잘 버텼죠. 안 생길 줄 알았는데 단골손님도 생겼고요."

◇카페에 걸린 노란 리본 = '내꺼' 출입문 옆에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가게 안에는 세월호 리본이 담긴 상자도 있다. 그의 앞치마에도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얼마 안 있어 이 씨는 경기도 안산지역 고등학교에 강의를 갔다.

"도시가 회색빛이었어요. 버스마다 세월호 관련 문구가 적혀 있고, 사람들도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조심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였고. 우연히 단원고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어요."

이 씨는 그 길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듬해 서울 홍대 거리를 걷다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받은 리본을 달고 다녔다. 어느 날 리본이 끊어졌고 그때부터 직접 리본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해맑던 아이들이었잖아요. 신나는 수학여행 길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서 더 마음이 아파요. 사람들이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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