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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기] (5) 박경리 자취따라 통영 서피랑을 걷다

소설가 박경리 흔적 가득한 골목길 '사랑·우정'수많은 바람 만나
문장 보물찾기서 서포루 오르기까지 '나 자신' 돌아보는 시간 안겨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2017년 04월 07일 금요일

통영 서호시장 입구를 등지고 서면 멀리 벼랑이 보인다. 통영성 세병관 서쪽, 시가지에서 높은 지대를 이루고 있어 형성된 벼랑이라 서피랑이다.

이미 많은 발길이 오간 곳이지만 걸어보기로 했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설명하기 입 아픈 인물이다. 장편소설 <토지>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소설의 압도적인 양과 문학적 입지는 죽어서도 그를 불멸에 이르게 했다. 음력 1926년 10월 28일 옛 명칭인 통영군 통영읍 명정리에서 태어난 박경리. 그가 태어난 집이 서피랑 가까이 있다. 서피랑과 서피랑마을에 박경리 흔적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가장 먼저 99계단을 따라 서피랑을 오른다. 계단에는 박경리가 2004년 MBC마산 특집 대담에서 한 말이 글로 옮겨져 있다.

서피랑마을 골목에서 만난 박경리 문장.

"사랑이라는 것이 가장 순수하고 밀도도 짙은 것은 연민이에요. 연민, 연민이라는 것은 불쌍한 데에 대한 것. 말하자면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것. 또 생명이 가려고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는 아픔이거든요. 그것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에요. 가장 숭고한 사랑이에요."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이 계단에 박혀있다.

서피랑을 오르는 이들에게 박경리는 자신과 마주 앉아보라고 권한다.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배제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주 마주 앉아보세요. 모든 창작은 생각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서피랑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후박나무가 있다. 높이 16m, 가슴높이 둘레 4.1m, 수령은 200년을 넘겼다. 우람한 자태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넓게 뻗은 가지는 서피랑 아래 시가지를 품는다. 그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다.

서피랑 꼭대기에 있어 서장대라 불렸던 서포루가 보인다. 구름이 끼어 시야가 좋지 않았음에도 서포루 기둥에 기대 바라본 통영항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풍경이라 더욱 그렇다.

서피랑 한쪽 귀퉁이 수령 200년 넘은 후박나무.

서포루 가까이 옛 통영항 주변 모습을 남긴 사진이 있다.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다. 문득, 어린 박경리가 보았을 풍경과 그가 떠올렸을 심상이 몹시 궁금해진다.

서피랑에서 서피랑마을로 내려오는 길, 작은 터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쓰는 서피랑 이야기 터널'이다. 터널 내벽에 붙은 칠판에는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쓴 글이 빼곡하다. 사랑, 우정, 건강 등 수많은 기원과 바람이 새겨진 공간이다.

터널을 뒤로하고 박경리 문학동네라 불리는 서피랑마을 골목으로 들어선다. 담벼락, 길바닥, 벤치에 쓰인 박경리 문장을 찾으며 걷다 보니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간 듯하다.

골목을 벗어나자 명정동과 문화동을 경계 짓는 고개가 나온다. 이곳에는 '서문'이 있었다. 성문 안 문화동은 '서문 안', 성문 밖 명정동은 '서문 밖', 고개는 '서문고개' '서문 까꾸막'이라 불렸다.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에 등장하는 그 서문고개다.

서피랑마을 골목에서 만난 박경리 문장.

박경리는 슬프고 괴로웠기에 글을 썼다. 그의 문학 기저를 이루는 공간 중 하나가 이곳 통영이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머니를 보며 가슴에 응어리졌을 어린 박경리가 유년 시절을 보낸 장소다.

서피랑에서 바라본 통영의 모습과 서피랑마을 골목은 어린 박경리의 마음을 모르는지 아름답기만 하다.

이날 걸은 거리 2㎞. 4296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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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석 기자

    • 최환석 기자
  • 문화부. 공연, 문화정책 담당. 레져도 함께. 제보/피드백 010-8994-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