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봄으로 모토캠핑을 떠나요

보통 사람들이 캠핑하면 떠올리는 모습은 대개 이렇다. 크고 멋진 텐트 앞에 타프가 쳐져 있고 그 아래 먹을 것 가득한 식탁이 놓여 있다. 식구들이 식탁을 중심으로 편안한 야외용 의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모습. 밤에는 화로대 가득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술잔이 오고 가고 별빛 가득한 밤이 깊어간다.

가족이 함께하는 캠핑은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혹은 여럿이 함께하더라도 텐트는 1인당 하나씩 따로 하는 캠핑은 어떨까?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 땅에 봄이 왔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그냥 쉬운 말로 아무렇게나 갖다 붙일 수도 있지만 외국을 다녀올 때마다 우리나라도 외국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진정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에 애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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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토캠핑에서 만난 캠퍼들끼리는 금새 친구가 된다. 모터사이클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 조재영 기자

 

매화꽃과 함께 찾아온 2017년 봄은 나에게 어서 모토캠핑을 떠나라고 유혹했다. 모터사이클에 최소한의 캠핑 장비만 싣고 떠나는 여행,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지인들과 함께 남해 송정 솔바람해변에서 2017년 첫 모토캠핑을 하기로 한 날, 하루 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꼼꼼히 챙겼다. 1인용 텐트, 1인용 매트, 침낭, 버너, 식기, 의자…. 비록 한 사람 분량이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빠진 게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그것들을 70리터짜리 큰 방수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모토캠핑용 가방은 비가 와도 물이 스며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방수기능이 있는 제품이 좋다. 가방이 꽉 찼다. 아침에 이 가방만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질끈 묶어서 떠나면 될 정도로 전날 밤에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잠이 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했다.

"혹시 뭐 빠진게 없나?"

그때 생각난 것이 커피였다. 캠핑을 다녀보면 항상 아쉬운 것이 '맛있는 커피'였다. 사람을 만나 즐겁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 배불러 좋은데 꼭 마지막에 맛있는 커피가 없어 입맛을 다셔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원두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도록 준비했다. 시각은 이미 자정을 훌쩍 지났다. 단골 카페에서 구입한 볶은 원두커피 200g 봉지를 뜯어 그라인더에 넣어 갈았다. 고요한 밤에 드르럭 드르럭 하는 핸드밀 소리가 고소한 커피 향과 함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200g을 손으로 모두 갈려면 제법 팔이 아프다. 한참 커피를 갈다가 "이 한밤중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음날 모토캠핑을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원두를 모두 갈아 병에 담고, 거름종이와 깨어지지 않는 플라스틱 드리퍼도 가방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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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장비를 가득 실은 내 모터사이클 BMW R1200RT. 모터캠핑을 떠날 때 사이드백과 탑박스가 있으면 많은 짐을 수납할 수 있어 편리하다. / 조재영 기자

 

하동 금오산

다음 날 아침, 함께 모토캠핑을 할 지인 2명과 함안 가야읍에서 만났다. 캠핑은 남해 송정 솔바람해변에서 하기로 했고, 그 전에 하동 금오산 정상에 올랐다가 남해로 가기로 했다. 함안에서 1004번 지방도를 타고 진주 사봉면으로 넘어가서 2번 국도로 갈아탔다. 경상대 앞을 통과해 사천 곤명면을 지나 하동 북천면까지 간다. 북천면에서 2번 국도에서 내려 1005번 지방도로 빠진다. 남쪽으로 향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 앞으로 나온다. 진교면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내가 앞장서 가다 한 식당에 들어갔다. 보통은 블로그 맛집 검색을 미리 해서 찾아가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느낌으로만 선택을 했다. 이럴 때 나는 두어가지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 '기사식당' 중에서 택시나 트럭 등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는 식당이 첫째다. 기사식당에 차가 많다는 것은 그 식당 음식 맛이 기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이미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슬쩍 식당 안을 들여다봤을 때 점심시간에 맞춰 식탁에 밑반찬이 쫙 깔린 음식점이다. 미리 그렇게 준비를 해둬야 할 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뜻이고 그런 집은 음식이 맛이 있거나 가격이 싸거나, 혹은 맛있으면서 가격도 싼 식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싸한 분석 아닌가?

어쨌든 아무런 정보없이 찾아간 식당의 주메뉴는 생선구이가 함께 나오는 정식이었다. 밥은 공기밥 말고도 큰 그릇에 따로 담아주기도 했다. 물론 무료다. 우리는 큰 그릇에 담아준 밥까지 다 먹었으니 배가 부를 만큼 불렀다. 정식 1인분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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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시메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한겨울에는 고도가 높은 정상 부근에 눈이 쌓이기도 한다. 앞 BMW R1200R, 뒤 혼다 ST1300. / 조재영 기자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고 나서 금오산(875m)으로 향했다. 금오산은 인근 지역에서는 사방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높은 산이다. 꼭대기에는 군 시설이 있다. 그 앞에는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좋도록 주차장과 나무데크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군 시설로 가로막혀 있는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 3방향을 두루 조망할 수 있다.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공기 중의 수분 때문인지 바다와 섬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섬과 육지가 오밀조밀 맞대어 있는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념이 사라지고 어느새 감탄만 남는다. "이렇게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을까?" 복잡한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욕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겠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내려갈 채비를 하더니 도로로 내려가지 않고 등산로를 타고 내려간다. 위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얼마 못 가서 바위 너덜지대 때문에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간다. 힘들기도 하겠지만 재미있기도 하겠다 싶다. 올해는 체력 보강을 위해 나도 자전거를 좀 타고 싶은데 생각만큼 실천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 일행도 헬멧 쓰고, 장갑 끼고 모터사이클 시동 걸어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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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년(선조31년) 음력 11월19일 이른 아침 이곳 바다에서 왜군을 뒤쫓던 이순신 장군이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그로부터 200여 년 후인 1832년 이곳에 장군을 기리는 이락사와 유허비가 세워졌다. / 조재영 기자

 

남해 이락사

1002번 지방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 쪽으로 달린다. 최근에 4차로 확장 구간이 개통된 19번 국도를 타고 잠시 달리면 오른쪽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이락사가 있다.

두산백과의 이락사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 125. 사적 제232호. 경남 남해군 고현면(古縣面)에 있다. 관음포 앞바다인 이락파(李落波)와 노량을 잇는 해역은 임진왜란·정유재란 최후의 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충무공이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추격하다가 적의 유탄을 맞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곳이다. 이락파가 보이는 연안에 공을 배향한 이락사(李落祠)가 있는데, 공이 순국한 후 1832년(순조 32) 8대손 이항권(李恒權)이 제단을 설치하고, 비와 각을 세웠다. 경내에는 <대성운해(大星殞海:큰 별이 바다에 지다)>라고 쓴 묘비각(廟碑閣)과 순조 때 홍석주(洪奭周)가 세운 유허비, 그리고 1973년 건립한 사적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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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 고현면 이락사 뒤쪽,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건립된 첨망대. / 조재영 기자

 

시간도 넉넉하니 이곳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이락사와 첨망대만 있었지만 최근에 남해군이 이곳에 이순신 장군 테마영상관 등을 건립해 이 일대를 관광자원화 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락사로 오르는 길 양쪽으로 곧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이락사 뒤로 돌아서 가면 첨망대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첨망대는 도깨비 방망이 모양으로 바다로 툭 튀어나가 있는 반도의 끝에 있다. 첨망대까지는 대략 500m쯤이다. 첨망대에 오르면 남해군의 서쪽 바다와 그 건너 광양, 여수 산업단지가 빤히 보인다. 거인이 있다면 섬을 징검다리 삼아 저쪽으로 성큼성큼 건너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기는 싸움에만 출전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면, 적과 아군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을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야 싸움에 나섰다는 얘기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만이 승리·성공의 길임을 교훈 삼아야 하리라.

남해 송정 솔바람해변

남해읍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봤다. 모토캠핑의 기본은 단순함과 간결함이다. 이른바 미니멀리즘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파티 같은 캠핑이 아니라 먹을 것, 입을 것, 자는 것 모두 최소한으로만 준비한다. 우리는 마트에서 끓는 물에 데워 먹을 수 있는 햇반과 3분 요리, 라면, 물, 음료수 정도만 구입해 각자 모터사이클에 나눠 싣고 상주면 솔바람해변으로 달려갔다.

솔바람해변에는 그 이름처럼 겨울 끝자락을 품은 바람이 긴 해변을 따라 놀고 있었다. 봄이었지만 해변의 바람은 아직도 시렸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에 면한 넓은 야영장을 두고 2층 건물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비록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세지 않아 아늑한 자리였다. 양손에 떡을 쥘 수는 없다. 한 손에 떡을 쥐었으면 다른 한 손에 쥔 것은 놓아야 하는 법이다.

우리 말고도 모토캠핑을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나면 금세 이웃이 된다. 김해에서 일식당을 운영한다는 분은 일본 혼다의 온-오프로드 겸용 모델 중 기함급인 아프리카트윈(1000cc)에 캠핑 장비를 싣고 왔다. 그는 5월에 초등학생 아들을 뒤에 태우고 유라시아 횡단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국산 KR모터스의 기함급 모델인 미라쥬650PRO를 타고 온 분도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데 내년쯤 모터사이클을 타고 유럽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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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송정 솔바람해변. 아직 이른 봄이서 바람이 차갑다. / 조재영 기자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레저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서 유라시아 횡단 도전이 라이더들의 로망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대형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 자체가 남자들의 로망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여행이 그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형 모터사이클을 타다 보면 대한민국이 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든 5시간이면 끝에서 끝까지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륙의 길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기도 하다. 통일이 되면 조금 더 멀리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내 모터사이클을 타고 백두산에도 올라보고, 그 너머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햇반과 3분 즉석요리만으로도 식사가 즐겁고 재미있다. 주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져간 커피를 내려 마셨다. 같은 원두이지만 집에서 마실 때와는 다른 맛이다. 커피잔과 술잔을 손에 들고 모닥불 바라보며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각은 금새 자정을 넘는다.

이제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춥다. 밤의 텐트 속은 냉랭하다. 두꺼운 침낭이라도 온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핫팩을 흔들어 발 쪽에 뒀더니 온기가 올라와 견딜만하다. 그런데 추위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파도 소리와 일행의 코 고는 소리다. 각자 개인용 텐트를 쳤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방음이 전혀 안 됐다. 그 덕분에 잠귀가 예민한 나는 밤새 일행의 코고는 소리와 파도 소리에 시달렸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것도 훗날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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