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이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지난해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나간 직후 김해 인제대학교도 술렁거렸다. 각 대학에서 대자보와 시국선언이 속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제대학교 총학생회는 10월 31일 "학생들의 시국선언은 자칫 정치적 선동으로 비칠 수 있어 인제대 학생회는 중립임을 밝힌다"는 황당한 성명을 내놓았다. 이에 분연히 일어난 인제대 학생 1055명이 11월 3일 자체적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핵심은 바로 인제대학교 제약공학과 백은지(23) 학생이었다. 박근혜가 파면된 지 5일이 지난 3월 15일, 백은지 학생을 만나봤다.

인천에서 김해로

백은지 학생은 첫인상부터 뭔가 달랐다. 정장 차림이 아닌 편안한 복장으로 기자를 만났다. 딱히 부끄러워하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Q. 제가 아는 바로는 고향이 인천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됐나요?

"네,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를 다 인천에서 나왔습니다. 대입에서 여러 대학에 붙었는데 인제대학교도 붙고 서울에 다른 대학도 붙었습니다. 여기 온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제약공학이 전망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스무 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살아보고 싶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행을 해봐도 경북 밑으로는 안 내려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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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지 인제대학교 제약공학과 학생. / 임종금 기자

Q. 그래도 아직 잘 이해되지 않는데, 부모님은 쉽게 허락하셨나요?

"우리 아버지는 미술을 하신 분이라 조금 자유로운 분입니다. 아버지가 '사람은 지역이나 지형과 같은 삶의 터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인천은 산이 없어서 싫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만큼 자유로운 분은 아니지만 '무조건 안 돼!' 이런 건 거의 없으신 분입니다. 제가 김해에 가겠다고 하니까 '그래 한 번 생각해보자'라고 하셨습니다."

Q. 김해 오니까 낯설고 힘들지 않았나요?

"저는 처음에 전부 사람들 말투가 왜 이런가 싶었습니다. 뭔가 싸우는 말투 같고 일본말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화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말투는 사납지만 서로 챙겨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많이 있어서 좋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얘기들도 많고 가식이 없습니다. 서울은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말처럼 사실 각박합니다."

Q. 후회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사실 1, 2학년 때도 가끔 '서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아마 서울에 살았다면 여러 사회활동은 못 하고 취업이나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시달리면서 살았을 겁니다. 여기 와서 개인 생활이 많아졌고, 뭐 해봐야겠다 싶어 해 본 것이 더 많습니다. 게다가 인제대에도 알면 알수록 매력 있는 교수님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람은 늘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살자'며 자기 최면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말을 하면서 위 내용이 자기 합리화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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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은지 인제대학교 제약공학과 학생. / 임종금 기자

내가 뭘 믿고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Q. 제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몇몇 사회활동을 하신 것 같은데, 대학에 오시자마자 사회활동을 하셨나요?

"1학년 때는 남들 따라 취업준비를 많이 신경 쓰고, 전공 관련 자격증도 준비하고, 토익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Q. 그럼 언제부터 사회활동을 하셨나요?

"2학년 때 친구가 '평화나비 콘서트 서포터즈'를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이게 뭐냐면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는 콘서트인데 주로 서울에서 열리다가 2014년에 처음으로 부산 부경대에서 열렸습니다. 이때 이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사실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는 조금은 들었지만, 실제 내용을 듣고 보니 제가 상상하던 그 차원을 벗어나는 겁니다. 국가가 힘이 없어지고 국민이 보호받지 못하면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서울 수요집회에 가봤는데, 할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는 겁니다. 소녀들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저분들은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이 저 분들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이 드니 참 혼란스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제가 제대로 모르고 그저 '불쌍한 어르신'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것이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Q. 그때 세월호 참사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게 텔레비전을 보면서 '언제 구조되지?' 기다리는 입장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일단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자 싶었습니다. 당시 평화나비 콘서트 서포터즈 하던 친구들 가운데 일부가 남아서 역사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딱히 동아리 이름도 짓지 않고 그저 역사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여우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끼리 '세월호 간담회'를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유가족 두 분을 모시고 간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소도 대여하고 현수막도 붙이고 8~9명이 열심히 간담회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간담회 때 저희는 한 30명만 와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90~100명 가까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와서 놀랬습니다."

Q. 촛불집회 때 청소년들은 대부분 세월호 얘기를 하던데요. 기성세대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나 보죠?

"네, 사실 자기 일처럼 느낍니다. 컴퓨터로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나만 살아난' 느낌이 듭니다. 저나 제 친구들 또한 그 상황에 충분히 처할 수 있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당연히 구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체계가 하나도 안 보였을 때 실망이 드는 겁니다. '아, 이 나라는 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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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나비 활동. /백은지 학생 제공

Q. 국가에 대한 깊은 실망감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 또래는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미래를 그리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 모양이라면 도대체 이렇게 공부하는 이유가 뭔가 싶습니다. '내가 뭘 믿고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Q. 세월호 간담회 외에 다른 사회활동은 없었나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으니 교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청원 서명을 받았습니다. 어른들은 이 사건을 되게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왜 아직도 하냐?', '지겹지도 않냐?'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반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서명에 많이 참여해줬습니다."

몰카 걱정돼 화장실도 못 간다

Q. 총여학생회장 후보로도 출마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떨어졌습니다. 사실 2016학년도에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거 나간다고 하니까 저쪽(반운동권 계열)에서도 후보를 내세워 경선을 했습니다. 제가 총여학생회 낙선을 하고 총여학생회는 예상대로 올해 폐지했습니다."

Q. 지금 대학마다 총여학생회가 속속 사라지고 있는데, 이유가 뭘까요?

"사실 여학생들조차 '총여학생회가 왜 있어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여성인권이 신장된 것 같고, 사실 총여학생회 활동도 문제였습니다. 실질적인 활동보다는 단순히 여성의 날 맞이해서 여성 특강을 하거나 행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다면야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Q. 그렇다면 본인이 총여학생회장이 됐다면 어떤 활동을 하려고 했습니까?

"여학생들이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MT에서 굉장히 성추행을 많이 당합니다. 제 또래들과 얘기하니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씩은 다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 것을 얘기 못 하는 상황이 바로 총여학생회가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성폭력과 관련된 책자를 배부하고 기초적인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청소하는 분이 대부분 아주머니들이고, 대학 안에서도 여성 교직원이 있으니 이런 분들과도 함께 실태를 파악해서 간담회도 하려고 했습니다. 또 어쨌든 김해에서 인제대 총여학생회는 지역에서 여성인권을 얘기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곳이라 생각합니다. 위안부 관련된 활동도 하고 싶었습니다."

Q. 아직 세상이 남성 중심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언제인가요?

"총학생회 얘기도 나왔지만 전부 남자지 않습니까? 단과대나 개별 과 학생회도 집행부는 여학생이 있지만 의사결정을 하는 상층부는 다 남자입니다. 큰 틀을 바꾸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잘 안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용어 자체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묻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사고를 내면 '그 사람'이고 여자가 사고를 내면 '김 여사'죠."

Q. 여성인권이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총여학생회가 있을 때 모든 여자 화장실 몰카 검사를 경찰이 와서 다 했습니다. 제 남자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럼 왜 남자 화장실은 안 하냐고. 불공평하지 않냐고 그럽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남자들은 볼일 볼 때 몰카가 있을 것이라는 걱정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여자들이 공용화장실을 겁내는 이유가 누군가 나를 몰래 촬영하고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만 해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차원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하니 제 남자친구도 인정하더라고요. 이런 사소한 불편을 서로 알아가면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도 차츰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면 남성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요?

"장담합니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다고 남성의 지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부부라면 부인이 노동 대가를 제대로 받는다면 가정의 경제력이 상승하는 겁니다. 또한 남자로서 가져야 하는 부담감·책무 같은 것이 줄어듭니다. 내가 가장이니까 어떻게든 내가 다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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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농단 규탄 1인 시위. / 백은지 학생 제공

최순실보다 정유라에 더 분개

Q. 총학생회가 거절한 시국선언을 조직해 1000명 넘게 이끌어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나요?

"학생들은 시국선언 자체에 동의한 것도 있지만 총학생회에 대한 반감도 한몫 했습니다. 총학생회는 박근혜처럼 소통하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을 해 버렸습니다. 결국 박근혜와 똑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왜 니네끼리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냐'는 겁니다. 총학생회나 학생회 활동은 거의 눈에 안 보입니다. 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했던 선배가 아는 후배에게 물려주는, 자기들만의 리그가 돼 고립된 느낌입니다. 그래서 학생회비도 잘 안 걷힙니다. 이런 총학생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시국선언 내용 동의 여부를 떠나 그것이 시국선언 참가자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대학생들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파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대학생들은 이런 기대는 있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나 희망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나 기대가 정유라에게서 막혔습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절망하는 겁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해서 저들을 방치한 결과가 이거라는 겁니다."

Q. 그럼 곧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들어설 건데, 대학생들이 원하는 건 뭔가요?

"정말 답답한 게 일자리 없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래가 안 그려지는 것이 답답한 것입니다. 당장 취업을 해도 20년 후 나의 모습이 안 그려집니다. 그러니 내가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깜깜한 상황입니다. 이리로 가기도 무섭고 저리로 가기도 무서우니까 남들 따라 취업공부건 토익이건 뭐든지 하는 겁니다. 이것이 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만 있으면 더 불안하니까 뭐라도 해 보는 겁니다. 한 번 실패하면 끝장일 것 같으니까. 정답이 안 보이지만 공무원은 그나마 약간 미래가 보이니 올인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새 정부에서는 '열심히 해보자. 배짱 있게 해보자. 한 번 실패했다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더라. 우리가 소신을 가지고 뭔가 열심히 해보자'는 확신이 들도록 정책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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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대 역사 동아리 여우비의 김해 소녀상 세움 활동. / 백은지 학생 제공

Q. 다음 대선 때 투표율이 높을까요?

"네, 확신합니다. 굉장히 높을 겁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고서야 거의 다 투표할 겁니다."

Q. 기성세대들은 입으로는 대학생들이 고생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불신의 눈이 여전합니다. 니들이 뭘 할 줄 아냐. 우리는 열심히 산업을 일구고, 민주주의를 일구고 열정을 불태우면서 살았다는 자부심 말입니다. 이런 기성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금 우리 세대를 보면 겨울잠에서 막 깬 느낌입니다. 과거엔 학교에서 정치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정치와 관련 없는 얘기에서도 최순실, 정유라, 박근혜 얘기가 그냥 튀어나옵니다. 확실히 느꼈습니다. 기성세대가 안 해 주니까,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는 이제 4학년이다. 곧 사회에 진출할 나이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마 그는 사회 어디서든 잘 자리 잡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학생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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