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이 글을 쓰는 시간은 3월 10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양심에 대한 판단으로 귀결될 것이다. 양심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인간의 마음이다. 양심으로 양심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잘못된 평결이 나온다면 부끄러움이고, 나라로 보면 국치(國恥)가 될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에 우리 주권을 잃은 날을 국치일이라고 했듯이 이번 사태는 국가적 치욕이 되든지, 저질러진 치욕을 양심으로 단죄함으로써 국가적 치욕을 씻는 양단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평결이 나왔다. AP통신은 "한국 첫 여성 대통령의 기막힌 몰락(stunning fall)", "2012년 대선에서 아버지에 대한 보수의 향수 속에 승리한 독재자의 딸이 스캔들 속에 물러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헌재 결정에 대한 요약을 아주 잘 나타낸 말로 생각된다.

독재자(獨裁者)란 무엇인가? 정치에 독재자가 나오면 백성의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독재는 차라리 스스로에 대한 독재라면 자기를 마름질하여 극기(克己)가 될 수 있다. 남한테 독재를 행하면 죄악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법을 준수하고 집행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소통을 멀리하고 밀실에서 일을 처리하면 환관의 정치가 되고 '나 홀로'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스물한 살 때 아우 영묵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큰 충격

그녀의 아버지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근대화로 가난을 몰아낸 축약적 경제발전을 이뤄 공을 세웠다. 반면 유신정권은 군부 쿠데타로 시작해 독재로 장기집권하였다.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법 위에 권력이 앉게 되는 못된 역사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아래위 할 것 없이 상식이 허물어지고 부정부패가 뿌리를 내린 기형(奇形)사회, 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국민의식을 낳았다.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이 컸다. 때문에 공과(功過)를 두고 논란이 많다.

그런데 그 딸은 아버지와는 다른 독재의 길을 걸었다. AP통신의 표현대로 '스캔들의 독재'였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은 너무 많았다.

다석이 살아계신다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물어보고 싶다,

이번에는 다석의 제자 박영호 선생이 쓴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큰 사상가 다석 유영모>를 읽어보도록 하자. 첫 장부터 읽어가면서 군데군데서 발췌하여 적기 때문에 글의 흐름은 어색할 것이다.

다석은 큰 사상가들처럼 장수했다. 1890년~1981년 약 한 세기를 살았다. 그의 부모님이 많은 자식을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스무 살을 넘긴 형제는 아우 영철과 영모뿐이었다.

영모는 날 때부터 아주 약골이었다. 아마 미성숙아로 태어난 것 같다. 일곱 살 때 만연한 콜레라에 걸렸다가 기사회생하였다. 어머니가 설사로 탈진한 어린 영모의 항문을 손바닥으로 7~8시간 막아 살려냈다고 한다.

그런데 스물한 살 때 아우 영묵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이가 평생 냉수마찰을 한 것이나 늘 걸어 다니기를 즐기고 맨손체조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려 한 것은 이러한 영향이 컸다고 보인다.

대부분의 큰 사상가들이 죽고 사는 문제, 즉 인생사의 가장 큰 고뇌에 봉착하는 것은 이른 나이 때다. 이와 달리 사람들은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혹 늙어 죽음에 직면하기 전에는 생사문제를 등한시한다. 젊었을 때는 자기는 죽음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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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 오산학교 1회 졸업기념.
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1910년 20세의 다석.

이승훈의 초빙으로 정주 오산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게 된다

다석은 1910년 9월 남강 이승훈의 초빙으로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과학교사로 교단에 서게 된다.

오산학교는 일제 치하에서 민족정기를 더 높인 학교로 유명하다. 정주와 오산학교 하면 생각나는 것이 시인 김소월과 백석이다. 둘 다 근현대 한국 시사(詩史)에서 북방을 대표하는 천재시인들이다.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는 이 글에서 한 번 인용해볼 만하다.

 

봄 가을 업시 밤마다 돗는 달도

예젼엔 밋쳐 몰낫서요.

 

이럿케 사뭇차게 그려울 줄도

예젼엔 밋쳐 몰낫서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젼엔 밋쳐 몰낫서요.

 

이제금 져 달이 서름인 줄은

예젼엔 밋쳐 몰낫서요.

 

요절한 시인이 아주 젊은 날 쓴 이 시는 단지 달을 보고 느낀 서정만을 읊은 것일까? 천재들이 한 번 깨달으면 모든 것에 미치게 된다. 만해 한용운이 시집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듯이 달이 그냥 달만은 아니다. 달에서 인생과 시대와 나라의 비극과 희망을 비춰보고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한 독백! 그 암울한 시대에 건네는 시인의 메시지이기에 값지다. 또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천재가 외롭게 느껴지게 한다.

남강 이승훈 선생도 깨달은 선구자이다. 남강도 처음에는 남다를 바 없었다. 유기공장으로 돈을 벌어 양반으로부터 받은 설움을 씻고자 돈으로 참봉(參奉) 벼슬을 샀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뒷날 도산 안창호를 만나면서 거듭났다고 한다.

글쓴이의 사설(私說)이지만 남강, 도산 … 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냥 햇빛이 비치는 듯하다. 남강의 얘기를 듣고 그분에 관련된 책을 보고 싶어 찾았지만 거의 출판된 책이 없었다. 순간 "아 우리나라의 수준이구나!"라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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