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대상 조사…지구력 싸움의 성과
탁상거울 문구 '기다림의 행복'과 겹쳐

'몇 달 전부터 장애인이 장애인 대상으로 사기 친 사건 조사하고 있습니다. 피해규모도 크고 죄질이 나빠 수사과장이 벼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중순 김해수 기자가 넘겨준 창원중부경찰서 업무 인수·인계 자료를 보고 투자사기단 '행복팀' 사건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2월 9일 창원중부경찰서 회의실에서 행복팀 관련 브리핑이 있은 직후 언론마다 기사를 크게 다루었다. 약 7년 동안 피해액 280억 원, 피해자만 500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농아인이라는 점에서 뉴스 밸류(가치)가 더 컸다.

브리핑 당일 우보라 기자와 사건 개요를 담은 스트레이트 기사와 농아인 상대로 대규모 사기가 가능했던 까닭, '김대규 수사과장 일문일답' 등 기사 세 꼭지를 출고했다. 하지만, 세 꼭지로는 어림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조그마한 팩트(fact) 하나라도 나오면 무조건 기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특종을 못하면 끝까지 물고라도 늘어지자! 3월 말까지 대략 스무 꼭지를 출고했다.

문득 지난 3월 14일 창원지방검찰청 맞은편에서 행복팀 엄벌 촉구 집회 때 만난 한 노부부가 생각난다. 아들과 며느리가 행복팀 피해자라고 했다. 아들이 사채 이자로만 한 달에 120만 원 내고 있고 곧 압류가 들어올 거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눈물을 글썽였고, 목소리에도 물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취재 마치고 기자실로 돌아왔을 때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행복팀 사건과 관련해서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김대규 수사과장을 찾았다. 과장실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회의용 책상 위 탁상용 거울 뒷면에는 '기다림이 주는 행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한국농아인협회 70년사>가 늘 놓여있었다. 지금도 있다.

행복팀 수사는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수사과 직원 30명이 매달렸다. '지구력 싸움'이었다고 했다. '기다림이 주는 행복'이란 문구를 보고 있으니, 피의자 한 명당 10시간 넘는 조사도 예사였고, 수화통역사들도 밤낮으로 함께 고생했다는 김 과장 말이 떠올랐다. 이런 노력과 정성이 없었다면 행복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단순 사기사건'으로 묻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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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아인과 농사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법률용어, 금융 관련 용어가 너무 어려워 농아인 피해자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차제에 농아인들 눈높이에 맞는 수사매뉴얼도 만들어 보고 싶단다. 김 과장이 바쁜 와중에도 오늘(5일) 오후 2시 대전 청소년위캔센터 대강당에서 열리는 '행복팀 투자사기 사건 피해신고 및 금융사기 예방교육' 강사로 흔쾌히 가겠다고 수락한 까닭이다.

아, 그리고 '행복팀 투자사기 사건 대책위원회'가 최근 후원계좌를 만들었다는 점도 '광고'한다. 피해신고 독려와 피해자 구제를 위한 지원, 집회 운영 등에 비용이 적지않다. 연대는 '입금'에서부터 시작된다. 신한은행 140-011-090925(예금주: (사)한국농아인협회 이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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