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을 사는 청년에 돈 빌려줘
상대를 믿고 안 믿고는 '제 믿음의 반사'

며칠 전 대전에 사는 친구가 내게 노트북을 한 대 주었다. 휴대용 저가 노트북인데 저장 공간은 32기가바이트에 불과하고 메모리도 2기가바이트지만 1.15킬로그램으로 가볍고 문서작성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어서 때론 외출 중에도 글을 써야 하는 내겐 무난한 것이었다. 얄팍한 호기심에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단종된 제품이고 상위 버전이 21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노트북을 친구로부터 거저 건네받은 날이 내가 다시 그 사람에게 30만 원을 빌려 준 날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친 때가 지난 설 직전이었으니 인연이 벌써 두 달이 넘는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네 번이나 송금했고 뒤늦게 전액을 돌려받았지만 그의 도움 요청에 다시 또 송금을 한 것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인터넷 중고제품 전문 사이트였다. 제법 괜찮은 초경량 인기 노트북이 54만 원이라는 저가에 올라와 있기에 직접 전화통화도 했고 신분증도 선뜻 문자로 보내 주는 그를 믿고 돈을 보냈는데 딱 그 순간부터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 그의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났다. 나이는 23세.

내 체질상 그에게서 돈을 돌려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압박수단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협박이나 구슬리는 것이 내 체질은 아니라서 아들보다도 나이가 적은 그를 나무란다는 것이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었다.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 가장 큰 벌은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안 잡히면 그는 평생 도둑질을 일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는 말이었다. 그는 죄송하다고 했다. 그의 말은 이미 내게 신뢰를 잃었고 건성으로 대꾸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저기 거짓말로 물건을 팔았는데 그들의 협박과 위협이 너무 무섭다면서 어쨌든 돈을 갚겠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설픈 초보사기꾼 같았다.

갚아야 하는 떼먹은 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액수가 상당했다. 내가 그 돈을 빌려주면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철석같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 노트북 값도 못 돌려받고 있던 내가 1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그에게 송금했다.

그 뒤로도 그 사이트에는 그의 이름으로 계속 화장품이니 운동기구니 하는 저렴한 중고제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참담했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찼고 다투어서 핀잔을 주었다. 그 젊은이 버릇만 나빠진다고도 했고, 한번 그런 길로 빠진 사람은 좀체 벗어나지 못하니 관계를 끊으라고도 했다. 내가 멍청하다는 지적은 공통된 것이었다.

밥을 굶고 있다고 해서 십여만 원을 보내기도 했고, 뭐 하는데 얼마가 모자란다고 해서 몇만 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무수한 대화가 문자와 보이스톡으로 오갔다. 단연코 말하건대 나는 그를 구원한다든가 버릇을 고치겠다는 오만은 없었다. 그냥 안쓰러웠다. 둘러대고 거짓말하면서 위기를 모면만 하는 한 영혼이. 극도의 불안과 긴장의 연속을 살거나 또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악의 평범성'을 사는 한 청년이.

한 달 반쯤 되었을 때다. 그가 전액을 갚았다. 알바를 한 돈 전액인데 모자라는 돈은 가불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내 친구들은 다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자기가 쓰던 노트북을 내게 준 친구도 그랬다. 믿기지 않는다고. 내가 다시 이 친구에게 30만 원을 빌려줬다고 하니 두 친구가 10만 원씩 내 계좌로 돈을 보냈다. 부담을 같이 나누자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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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는 믿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는 그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지 않을 뿐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 여부는 사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반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 유효기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오로지 직감에 의지하여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 녀석의 영혼에 평화가 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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