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아저씨도, 할머니도 나도 작가다!

오유진(36) 대표는 알록달록한 책을 한 아름 꺼내와 보여주었다. 작가 소개가 눈에 띈다. 8살 아이, 85세 할머니…. 모두 책에 들어간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린 작가들이라고 했다. 어떤 책은 순수한 문장에 웃음이 나오고, 어떤 책은 책장을 넘길수록 콧등이 시큰하다. 잘 다듬은 글과 그림은 아니지만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작은 기업 라온문화예술교육원의 '나만의 책 만들기'는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회사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오 대표는 문화와 예술로 즐거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스물다섯, 첫 사업

오유진 대표를 만나러 창원시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로 향했다. 창업한 지 이제 3년, 2016년 심사를 거쳐 입주했고 올해 입주 연장 심사를 받아 한 해 더 있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오 대표가 라온문화예술교육원을 기획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미술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전공도 산업디자인이었다.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중고등학교 때 미술을 했고 창원대에 진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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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유진 라온문화예술교육원 대표. / 서정인 기자

오 대표는 늘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그 마음으로 가득했다. 입시 준비하던 시절, 집안 사정이 예전 같지 않아졌던 것이 그 마음을 부추긴 것 같다고 했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승진하는, 그런 류의 성공은 끌리지 않았다.

"미술학원을 차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단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 빨리 뭔가를 이룰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도 하기 전에 학원에 취직했어요. 그때는 교육에 열의가 있어서 시작했다기보다는(웃음) 저의 꿈, 성취를 위해서였죠."

학원에서 일하고 처음 받은 돈은 50만 원. 그래도 싫지 않았다.

"내 학원을 운영하기 전에 교육을 받는 건데 거기에 돈까지 받는다는 마음으로 일했어요. 그때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연습을 많이 하고 나왔던 것 같아요."

1년 반 동안 일을 하고 나니 25살이었다. 바라왔던 미술 교습소를 차렸다. (오 대표는 무엇을 결정할 때 길게 고민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했다.) 원래 미술학원을 하던 자리를 그대로 받았기에 이름도 그대로 썼다. '화가들 미술'. 그게 첫 사업이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작은 규모의 학원이었는데 제 마음과 아이들에 대한 것은 대형 학원 못지않게 하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매달 인원이 안 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다른 학원과 좀 달랐던 교습법이 아이들, 또 학부모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했어요. '푸드아트'라고 해서… 예를 들면 풍경화 샌드위치를 만드는 수업에는 아이들이 빵 위에 식자재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하는 놀이 같은 걸 하고 주말에는 미술관에 가서 함께 관람하고 야외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고요. 프로그램을 항상 고민했어요.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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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교육문화체험 박람회 현장에서. /오유진 제공

그렇게 학원을 운영하며 왁자지껄하게 아이들과 몇 년을 보냈다. 결혼한 남편도 그 시기에 만났다. 그러던 중 오 대표는 학원을 정리한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러운 정리였다. 결혼 후 오 대표는 남편과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는 부부를 기다리는 직장도 지인도 없었다.

"다들 하는 말 있잖아요. '우리 이렇게 젊은데 다른 곳 옮겨 다니며 살면서 여러 경험을 쌓아도 재미있겠다.' 남편과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어요. 그러다 둘 다 '그럼 한번 해볼까?' 이런 마음이 든 거죠."

오 대표는 학원을 정리했고 남편은 회사를 그만뒀다.

"저희가 미국행을 생각하고 있어서 신혼여행은 일본으로 갔거든요. 그래서 세부도 영어권이니까 세부에 잠깐 가자고 해서 갔다가 스쿠버다이빙을 배웠어요. 거기서 네다섯 달 스쿠버다이빙만 하고 지냈어요.(웃음)"

그리고 부부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간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경험이든 해보고 싶었다. 일단은 캘리포니아 UCSD대학에서 영어교육 관련 과정을 공부하며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오 대표는 우연히 아트스쿨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다. 영어가 완벽하지도 않았고, 아는 이 하나 없었는데 무엇에 이끌렸는지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전화를 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이런 일을 했었는데 공고를 보고 흥미로워서 전화했다고요. 그쪽에서도 얘기만 듣고 그렇게 끊었어요. 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두세 달이 지났나? 연락이 와서는 포트폴리오를 들고 아트스쿨에 방문해보지 않겠냐고 그랬어요. 한국과 미국 예술교육 방침이 다르다 보니까 그쪽에서 한국 교육이 역으로 흥미로웠나 봐요. 못 보던 사례니까요. 그렇게 채용돼서 근무했었어요."

아무 계획 없이 갔던 미국에서 오 대표는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공부하고 일하고, 뜻밖에 찾아온 축복 같은 아이도 낳았다. 미국 생활을 한 지 2년 후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아이를 친지 하나 없는 미국에서 키우는 건 무리였다. 워낙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한국에 오자마자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예전에는 두 마리, 세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이도 있으니까…. 돌아와서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2014년에는 사업자등록을 했다. 15년도까지는 육아와 일을 병행해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바탕을 다졌고, 2016년에는 창원시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 입주 사업체로 선정되면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만드는 '나만의 책'

라온문화예술교육원은 문화·예술·교육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기획한다. 두드러지는 활동은 단연 '나만의 책 만들기'다. 내가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일이다. 책에 담을 콘텐츠를 쓰고 그릴 수 있게 수업을 통해 이끌고 그 콘텐츠를 모아 책 한 권을 출판하는 과정까지 맡는다. 설명을 들으니 이 자체가 교육과 놀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오 대표는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학원을 다시 여는 게 어쩌면 가장 수익이 보장된 일일 텐데 왜 생소한 사업을 구상해 지역 곳곳을 바삐 누비고 있을까.

 "학원 할 때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늘어났었는데요….(웃음) 여기가 아마 결승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유지에도 힘을 쏟아야 하고 더 발전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승점을 좀 더 멀리 옮겨놓고 싶었어요. 만약 다시 돌아오더라도 일단 해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 때문에 책을 많이 접했었고 개인 출판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아동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생각했는데 수업을 하다 보니 신기하게 모든 연령이 가능한 프로그램이고, 어떤 내용도 다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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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만든 책. /오유진 제공

"어느 날 생각해보니까 유아부터 학생·성인·40대·50대…80대까지 전 연령을 다 만나고 있더라고요. 스스로 놀라기도 했고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은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책을 만들 수 있게 비용을 끌어오는 것도 큰 과제였다. 오 대표는 샘플 책들을 들고 다니며 발로 뛰었다.

"이건 과목으로 치자면 국영수가 아니잖아요.(웃음) 그런 건 아무리 비용이 들어도 할 텐데…. 그래서 여러 사업에 지원했어요. 사업기획서 작성해서 선정이 되면 다양한 대상에게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더니 차츰 알려지면서 학교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책 한 권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일일특강과 12주, 16주 프로그램 등. 또 그만큼 수업 커리큘럼도 다양하다.

"전 학년이 두 반인 학교에서 하루 만에 책에 들어갈 콘텐츠를 한 명씩 다 만든 적이 있어요. 할머니들 수업은 다른 활동도 함께 하니까 더 길었어요. 이 프로그램은 일일특강부터 장기까지 다 가능한 거예요. 커리큘럼과 방법을 연구해서 다 가지고 있어요."

어떤 내용이든 책으로 만들 수 있다

책들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동심이 배어 나오는 책, 고단했던 삶의 여운이 느껴지는 책, 그 주제와 이야기는 다 전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다. 몇 가지 책을 꼼꼼히 보았다. <모험대장>은 다문화가정 어린이 수업을 통해 나온 책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 열 명가량이 함께한 수업이었어요. 수업방식은 '지금 수업시간을 통해서 선생님이랑 여행을 하는 거야.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놀이를 하고 활동을 할 거야.' 이런 놀이 형식으로 수업해요. 그런데 열 몇 명 아이들이 모두 다 다른 주제의 책을 만들었어요. 어떤 친구는 세계여행에 대한 책, 어떤 친구는 세계의 옷에 대한 책. 이 <모험대장>이라는 책은 아이가 쓴 글에 엄마가 몽골어로 번역을 해주셨어요. 책 뒷면에 QR코드가 있는데 그 코드를 스캔하면 엄마가 아이에게 몽골어로 얘기하는 영상편지가 연결돼요."

<할아버지 한평생 이야기>는 손자가 쓴 할아버지 자서전이다. 이 책은 '할아버지 단어'로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단어: 시미기-소가 배고플 때 먹는 풀, 소굴테미-소풀을 담는 바구니, 초등학교-초등학교, 정지-부엌, 사카린-설탕보다 달달한 간식, 마카-전부, 마실-마을, 개떡-보리로 만든 떡, 땅기땅-구슬치기, 진놀이-친구들과 두 팀으로 나눠서 하는 집 지키기 놀이, 벤또-도시락, 만데이-언덕

"아이가 할아버지를 인터뷰해서 할아버지 자서전을 쓰기도 하고 태몽에 대한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기도 하시고…. 이 <거미줄>이라는 책은 읽으면 진짜 눈물 나요. 이 아이는 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남다른데 책을 보면 '할머니꽃'이 '자기꽃'을 비가 오니까 막아주고 벌레가 오니까 막아주고 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꽃'이 주저앉은 거예요."

"우리 아들, 할머니가 떠나셔서 많이 슬프구나! 하지만 말이야 삶은 거미줄 같은 거란다. 서로서로 엮이고 연결돼서 돕고 살지…. 할머니의 거미줄이 끊기면 말이다… 그 자리는 비겠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단다. 그리고 할머니는 항상 여기에 계시 단다."

툭 엄마가 나의 '마음'을 가리키셨어요.

"이 친구는 이 책을 쓰고 나서 자신의 진로를 작가로 정했어요."

중·고등학생들이 만든 책은 제목에서부터 10대가 마주하는 여러 고민들이 보인다. <누가 금수저일까요?>, <나를 찾아줘!>, <Target>….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하기 힘든 세상이라고 학생들도 생각해요. 책을 만들고 나서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꿈꾸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쓰면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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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들이 만든 책. /오유진 제공

'큰아들보다 중헌' 책 만들기 수업

오 대표는 어르신들과 책을 만들며 쌓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85세 나가 죄일 처음 기리본 미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85세 할머니께서 낸 책이에요. 이 책들은 곳곳에 전시도 많이 다녔어요. 이 수업을 화요일마다 했는데 처음 몇 주 동안 수업 전날 밤을 새웠어요. 저도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이 있었고 어른이 살아가는 삶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는데 할머니들의 삶은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어르신들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내야 할지 고심했다. 일단 수업을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로 잡았다. 가까운 기억부터 더듬도록 했다.

"처음부터 너무 멀리 가면 멀미가 나니까 가까운 시간부터 해서 80대·70대·60대… 이렇게 삶의 순간들을 끄집어내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죠. 시집가던 날 입었던 한복 생각하면서 한지를 찢어서 무얼 만들기도 하고, 그걸 사진 찍어서 또 책에 활용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딸이어서, 커서는 가족을 위해, 남편, 자식을 위해 살아왔고 본인이 주체인 활동을 안 해보셨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자꾸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젊은 세대들은 어르신들이 늙어서 못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이분들은 새로운 것을 나이가 든 상태에서 배우니까 젊은 사람보다 조금 늦는 것뿐이에요. 할머니가 컴퓨터로 책에 들어갈 이름 석 자를 처음 치셨어요. 이름이 나오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 수업에 제가 프린터를 지고 갔어요. 이름이 종이에 프린트되어서 나오니까 또 너무 좋아하시고…. 그런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할머니들을 모시고 소풍도 갔다. 폐교였지만 학교에 가서 교복을 입고 예쁘게 사진도 찍었다.

"할머니에게 다음 주에 소풍 간다고 했더니 제 손을 잡으면서 다음 주에 립스틱 가져오라고…(웃음).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립스틱을 가져오셨어요. 30주 동안 수업을 했는데 이 어르신이 한 번도 안 빠지셨어요. 하루는 할머니가 큰아들이 서울에서 온다면서 수업 못 오겠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고, 어머이! 자식이 오는데 그렇게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요' 하면서 이거 안 와도 된다며 괜찮다고 했더니 '미안해서 우짜꼬….' 하시면서 가셨어요. 근데 다음 주에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가 아들 어데 갔냐고 그랬더니 아들 왔긴 한데 도저히 여기 안 오면 안 될 거 같아서 왔다고 그러셔요. 제가 농담 삼아 자식보다 좋은 시간이었나 보다 그랬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귀하지 않은 수업이 없지만 할머니들을 위한 수업에는 특히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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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유진 라온문화예술교육원 대표. /서정인 기자

"아이들이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으니까요. 어르신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왜 노인 대상 강좌는 북 치기, 서예, 요가, 힐링체조 이런 거밖에 없을까? 해보니까 왜 그런 줄 알겠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이 매력에 빠지게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웃음치료부터 해서 다양하게 노인 관련 강좌를 다 배웠어요. 마음이 열리면 나중에 그림도 알아서 그리고 그러시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받는 피드백은 오 대표를 힘 나게 한다.

"어떤 초등학생 학부모님이 문자를 보내셨어요. 아이가 캠핑 가는 날인데 이 수업은 꼭 듣고 가야 한다고 수업을 듣고 캠핑하러 갔데요. 그래서 어머니가 도대체 수업이 어떻길래 아이가 이러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이 그런 것 같아요. 저도 학원을 운영해봤지만 아이가 공룡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 달 내내 공룡만 그릴 수 없잖아요. 근데 이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가지고 책을 만들 수 있잖아요. 또 한 아이는 아무리 학습지를 시켜도, 야단을 쳐도 글을 배울 의지가 없었는데 우리 수업을 만나고 책을 만들어보더니 엄마한테 '엄마 나 한글 왜 배워야 하는지 이제 알겠어'라고 스스로 그러더래요. 그런 기억들이 감사하게 느껴지죠."

2017년 오 대표는 지금 하는 일의 체계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작년에 항상 바빴어요. 이런 수업을 잘 만날 수 없는 곳에서 전화가 오면, 제가 안 가면 이 친구들은 기회가 잘 없겠다는 생각에 막 달려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틀린 건 아니지만 또 옳은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너무 바빠서 힘드니까 극단적으로 놓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또 이것 때문에 참 즐거운데 그만두는 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려고 해요. 수업하고 프로그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라온문화예술연구원을 구조적으로 더 탄탄하게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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