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31일부터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뮌헨 올림픽 기념 문화행사에 쓰인 오페라 심청을 작곡, 초연하면서 동서양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버렸다. 그의 자전적 설명처럼 이번 공연에서 윤이상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어느 나라, 누구 음악이 아니라 우주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계기로 기획됐다. 안타까운 것은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한국에서 윤이상 음악은 금기였다. 1974년 이후 윤이상 음악은 공식적인 제한을 받았고, 금기는 1993년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출범으로 윤이상을 재조명하는 분위기지만, 최근 '블랙리스트' 파문 등 정치적 잣대는 여전히 윤이상을 향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그러나 강제로 추방당한 한국의 사회 문화·전통의 기억은 개인·예술가로서 윤이상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다. 윤이상이 한국 안팎에서 경험한 억압·고통·저항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윤이상 음악은 대부분 유학 시절과 망명 예술가로 정착한 시기에 쓰였다. 이방인으로서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현대음악 흐름을 받아들였다. 심포지엄 발표에서 윤이상은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기억행위'를 활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에서 살던 때의 마음·풍경·옛 문화 등의 '기억'에서 샘솟은 작품을 만든 셈이다. 그가 낳은 작품 제목에서 기억과 관련한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지난 95년 타계한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고자 남한과 북한에서는 주기적으로 윤이상 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확인한 음악제의 시작이었다. 또한, 음악제 어느 곳에도 '블랙리스트'라는 정치적 잣대가 끼어들 틈은 없다. 98년 11월 초에 평양에서 남북한 음악인이 함께 참가한 제1회 '윤이상통일음악제'가 열린 이후에 2006년 북한 핵실험으로 '윤이상 평화음악축전' 평양 공연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세계적인 작곡가를 기리는 남북공동음악제도 열리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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