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여성의 날 다양한 행동지침 아이디어
유쾌한 여성운동이 일상의 문화 되는 듯

지난 3월 8일은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은 여성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알지 못한다. 당일 신문과 뉴스에서 짤막하게 소개하는 것이 고작이며 거리에서 장미꽃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나마 알고 있는 쪽에 속한다. 몇 안 되는 <무한도전>의 망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회자되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해 여성단체와 여성들이 함께하는 집회 정도로 인식되던 3·8 여성의 날 행사가 올해는 뭔가 다르게 다가왔다. 올해 행사의 키워드는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이었다. 남성 임금을 기준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에 불과하다. 남녀의 임금격차 36%를 8시간 노동시간으로 계산하면 여성들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3월 8일은 3시에 조기퇴근하자는 것이었다. 남녀의 임금격차를 재밌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조기퇴근하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주는 행동지침이었다. "회의 중이라도, 청소 중이라도, 알바 중이라도 3시엔 그대로 멈춰라. 멍 때리기, 아무 말로 랩하기, 괜히 화장실 가기, 괜히 탕비실 가기, 하던 일 멈추고 창의적으로 놀아보자"라는 문구는 너무나 발랄한 문제제기이며 동조를 이끌어내는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톡으로 메시지를 받고 혼자 웃었다. 임금 차이를 이보다 명확하게 인지시킬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OECD 가입 34개국 중 가장 높은 나라이며 2002년 이래 변하지 않는 성별 임금격차 1위 국가이다.

세대별로 보면 30대, 40대로 갈수록 격차는 점점 더 커지며 이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경력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무감각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해 여성의 날은 소극적이지만 함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왠지 3시부터는 일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동조하고 싶었고 소극적이나마 연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혼자 멍 때렸다. 아무도 모르는 시위이긴 하지만 왠지 즐거웠다.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운동이 매우 유쾌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기사로 보니 그날 광화문 행사에서는 여성의 몸 해방을 응원하는 단체 '언니미티드'가 청계광장 한복판에 '브라 보관소'를 차렸다고 한다. 뽕브라, 푸시업 브라, 와이어 브라 등 여성의 가슴은 크고 봉긋하고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행사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몸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유쾌한 문화운동인 것이다.

페미니즘은 언젠가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우리 사회의 폭력성과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었다. 온라인에서는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를 필두로 한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페미니즘 도서가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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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이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페미니즘이 줄담배 피우는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경험과 요구를 반영하는 언어가 되고 문화가 되는 듯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던 페미니즘의 오래된 명제가 이제야 현실에서 살아나는 기분이 들어 올해 3·8 여성의 날은 유쾌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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