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추방당한 조국 '기억행위'
작품에 풍경·문화 담아내
"정권 바뀔 때마다 협조한
문화계 과거 되돌아봐야"

지난달 31일 2017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됐다. 올해는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윤이상 음악과 함께 총 4차례에 걸쳐 그를 회고하는 심포지엄을 연다. 2일 오전 10시 30분 윤이상기념관 메모리홀에서 첫 번째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희경 연세대 객원교수 사회로 최애경 충남대 강사, 장현경 이화음악연구소 연구교수, 이경분 서울대 HK연구교수, 윤신향 베를린 훔볼트대 융합젠더연구소 강사가 윤이상 음악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었다.

◇미래를 향한 기억 = 윤이상 음악은 대부분 유학 시절과 망명 예술가로 정착한 시기에 쓰였다. 이방인 윤이상은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현대음악 흐름을 받아들였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최 강사는 "한국과 독일, 동아시아와 서유럽은 윤이상의 삶과 예술에서 매우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여기서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그러나 강제로 추방당한 한국의 사회 문화·전통의 기억은 개인·예술가로서의 윤이상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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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윤이상 선생 생전 모습.

특히 최 강사는 윤이상이 한국 안팎에서 경험한 억압·고통·저항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윤이상은 1958년부터 1994년까지 기악곡 101곡, 성악곡 17곡 등 총 118곡을 지었다. 윤이상은 교도소에 있던 때 쓴 세 곡을 빼고 모든 작품을 유럽에서 창작했다.

최 강사는 "고향과의 물리적 분리와 거리가 과거와 현재 고향의 참모습을 보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성찰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윤이상은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기억행위'를 활용했다. 한국의 기억이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에서 살던 때의 마음·풍경·옛 문화 등의 '기억'에서 샘솟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낳은 작품 제목에서 '기억'과 관련한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 까닭이다.

최 강사는 "윤이상 100주년 기념은 그가 연대하고 기억하고자 한 바를 떠올리고 이어가는 일"이라며 "과거의 기억으로 성찰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창조"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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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향한 정치적 잣대 =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한국에서 윤이상 음악은 금기였다. 1974년 이후 윤이상 음악은 공식적인 제한을 받았다. 금기는 1993년까지 이어졌다.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출범으로 윤이상 음악이 재조명되고 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장 교수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내 윤이상 곡 연주 현황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동백림 사건 시기인 1967~1969년 윤이상 음악은 독일 함부르크·뉘른베르크, 미국 뉴욕 등 외국에서 연주된다. 장 교수는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 연주되지는 않았지만, 음악계에 자극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1970년부터 1974년까지 금기는 다소 완화한 듯 보였다. 뮌헨 올림픽 기념 문화행사에 쓰인 오페라 <심청>을 작곡, 초연하면서다.

1971년에는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윤이상 곡이 포함된다. 같은 해 서울음악제에서는 '낙양'이 연주된다. 1971년에는 윤이상 특별 사면이 언급되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윤이상은 1974년 다시 논란이 된다.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석방을 요구해서다. 한국에서 반윤이상 조류가 커졌고, 비난의 표적이 된다. 이 때문인지 1975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에서 열린 공식 공연에서 그의 연주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후에도 윤이상 음악은 국내에서 부침을 겪는다. 예술계 평가와는 다르게 정치적 잣대는 윤이상을 흔들었다. 문민정부 출범 후 방문·작품 활동 등 규제 조치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였으나 지지부진했다. 윤이상 음악을 향한 대중의 관심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출범으로 윤이상을 재조명하는 분위기지만, 최근 '블랙리스트' 파문 등 정치적 잣대는 여전히 윤이상을 향한다.

장 교수는 "과거 정권들이 문화예술을 장악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협조한 문화계는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윤이상 활동을 통해 창작과 자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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