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 큰 울림 저금통 끼끼의 모험]다섯 번째 이야기-팽목

지난 1월 31일 창원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고동성(44) 씨가 좋은 곳에 기부해 달라며 경남도민일보에 토끼 모양 저금통을 성금으로 맡겼습니다. 고 씨는 원래 이 저금통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주고 싶었지만 생업이 바빠 그러지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러면 제가 직접 팽목항 유가족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금통을 데리고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도 가고, 단원고가 있는 안산도 가보자고 생각하면서 저금통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저금통에다 끼끼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말이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세월호 보낸 팽목항

세월호가 목포신항을 향해 한창 가고 있던 지난 31일 새벽, 저금통 끼끼를 데리고 팽목항으로 향합니다. 오전 9시, 세월호가 떠난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열흘 이상 이곳을 지켰던 취재진은 슬슬 철수 준비를 합니다. 아마도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차분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이 머물던 임시 숙소는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곧 목포신항으로 옮겨질 테지요. 빨간 등대가 있는, 이제는 한산해진 팽목항 방파제를 걷습니다. '세월호를 보내며, 찾으소서. 영면하소서.' 진도군에서 세월호를 보내면서 내건 펼침막이 보입니다. '잊지 않겠다'는 글귀가 적힌 노란 깃발은 제법 낡았지만 여전히 힘차게 펄럭입니다. 난간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은 빗물에 젖은 채 서로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떠나보내는 팽목항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애잔합니다. 사실 끼끼가 목포신항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끼끼가 모험을 떠난 건 작은 마음들을 찾자 보자는 취지였지요. 그런 면에서 팽목항으로 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세월호가 떠나고 한산해진 팽목항./이서후 기자

이제 끼끼를 데리고 동거차도로 가려 합니다. 지난번 안산에서 만난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도언이 엄마)이 한번 들러보라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동거차도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만든 감시초소가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동거차도까지는 한림페리 3호가 하루 한 번 운항합니다. 진도 앞바다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입니다. 팽목항에서 출발한 한림페리 3호는 종착지인 서거차도까지 9개 섬을 모두 들릅니다. 8번째 섬인 동거차도까지 운항시간은 3시간, 그야말로 '완행' 카페리입니다.

오전 9시 50분 배가 팽목항을 출발합니다. 문득 목포신항을 향해 가는 세월호도 지금 같은 바다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근처를 지나고 있다면 볼 수 있을까, 난간에 기대 두리번거립니다. 하지만, 먼바다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봄이라지만 바람이 찹니다. 객실에서는 승객들끼리 세월호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동거차도에 남은 지난날의 흔적

"수온이 20도만 돼도 엄청 차거워. 근데 당시 물 온도가 10도여. 얼매나 추웠으까이." 이제는 제법 담담해졌지만, 안타까움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다들 오늘따라 물결이 잔잔하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배가 동거차도와 가까워지자 다시 밖으로 나와봅니다. 저 멀리 정박한 바지선이 보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곳, 맹골수도입니다. 바지선 너머 맹골도가 흐릿하게 떠 있습니다. 맹골수도 쪽은 육안으로 봐도 물살이 거칩니다.

세월호 인양작업을 감시하던 초소에서 본 사고해역.

"갔네, 갔어…." 난간에서 세월호가 떠난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승무원이 한숨같은 말을 뱉어냅니다.

"어휴, 그날서부터 꼬박 3년을 지켜봤어요. 우여곡절도 많았고…, 가고 나니 서운하기도 하네요."

사고 당시 한림페리 3호도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려고 갔었답니다. 그때 사고 해역을 지나는 유일한 여객선 항로였거든요.

배가 동거차도로 들어섭니다. 돌아가는 배를 다시 타야 하기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다행히 감시초소는 동네 뒤편 낮은 산등성이에 있습니다.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풍경이 탁 트입니다. 아까 봤던 바지선이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아, 그래서 여기다 감시초소를 세웠구나. 몇 분이 감시초소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중 한 분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어떻게 왔느냐고 묻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천막 안에 누워 있던 유가족분께 데려갑니다. 한 아버님이 누운 몸을 일으키십니다. 피곤하고 지친 얼굴, 충혈된 눈. 보자마자 대뜸 죄송하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 나누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간단하게 끼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이네요." 간단한 한마디 하시고는, 다시 눈을 감고 드러눕는 아버님.

미수습자 가족 임시 숙소 빈터를 홀로 지키던 진돗개.

허전함 달래주는 잔잔한 움직임들

하산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3년 만에 그 커다란 세월호의 폐허를 마주했을 유족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요. 지난 열흘간 얼마나 취재진에게 시달렸을까요. 그래서 감시초소로 가는 일도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유가족들을 직접 대면하는 건 언제나 무척 힘든 일입니다. 동거차도에는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앉아 봄볕을 쬐고 계십니다. "지금쯤 도착했겄지?" "아녀~, 오후 2신가에 도착한다더구먼." 어르신들은 세월호가 언제 목포신항에 도착하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합니다. 서거차도에서 뱃머리를 돌린 한림페리 3호가 다시 동거차도에 도착합니다.

7시간 만에 돌아온 팽목항. 그동안 미수습자 가족 숙소는 목포신항으로 옮겨지고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더욱 쓸쓸해 보이는 팽목항 분향소를 찾아갑니다. 분향소 안에서 한 여인이 혼자 조용히 흐느끼고 있습니다. 품새를 보아 유가족은 아닌 듯합니다. 여인은 분향소를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움직임입니다. 세월호가 떠난 팽목항에 남은 것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끼끼를 이곳까지 오게 한 그 작은 마음 말이지요. 팽목항에 서서히 해가 집니다. 숙소가 옮겨가고 난 빈터에 진돗개 한 마리가 누워있습니다. 매일 자신을 반겨주던 사람들이 사라진 게 아쉬운 모양입니다. 노을을 받아 쓸쓸한 빈터. 하지만, 이 빈터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작은 마음들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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