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8) 사천
용이 바다를 향해 누운 '와룡산'
고려 현종 임금되기 전 머물러
801m 새섬봉 벼랑 이루며 솟아
한려수도 시원한 조망 한눈에

사천을 대표하는 산을 추천해달라니 곧장 "와룡산(瓦龍山·801m)"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성은 덜하지만 숨은 가치를 가진 산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와룡산에는 가봤느냐"는 말이 다시 돌아온다. 닥치고 와룡산부터 가보라는 뜻이겠다.

와룡산은 지역의 진산이자 명산이며 사천이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산이다.

산 이름에 용(龍)이 들어간 곳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대구, 안동 등에도 와룡산이 있다. 산마다 개성이 있어 굳이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감히 잣대를 댄다면 사천 와룡산은 여러 면에서 단연 수위에 꼽힐 것이다.

◇승천을 기다리며 엎드린 용 = 와룡산은 사천시 사천읍, 사남면, 용현면, 남양동, 벌용동, 용강동에 걸쳐 있다. 하늘에서 보면 바다를 향해 용강동 쪽에 머리를 두고 U자 형 말발굽 모양으로 꼬리를 접어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용이 누워 있는 산' 와룡산으로 불린다.

문헌을 확인하면 대부분 산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름이 몇 번 바뀐다. 그러나 와룡산은 변함없었다. 누가 봐도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노란 야생화가 가던 걸음을 붙잡는다.

와룡산은 생김새 때문에 얻은 이름이지만 묘하게 역사적인 내용과도 연결된다.

와룡산 골짜기에는 와룡사라는 절이 있었다. 지금도 와룡사지로 추정되는 터가 와룡마을에 있다. 이 절에는 고려 8대 왕 현종(992∼1031)이 임금이 되기 전 머물던 곳으로 전해진다.

<신동국여지승람> 기록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 왕욱(王郁)이 있었다. 욱은 조카 경종의 부인 헌정왕후와 정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된다. 이 사실이 성종에게 발각되면서 욱은 와룡산 기슭으로 귀양을 오게 된다. 임종을 앞둔 욱은 아들 현종에게 '나를 고을 서낭당 남쪽 귀룡동에 엎어서 장사하라'고 당부한다. 나중에 아들 현종은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를 효목대왕으로 추대한다. 결국 아들은 살아서 왕이 되고 자신은 죽어서 왕으로 추대받으니 엎드린 용이 승천한 셈이다.

◇용 등에 올라 바다로 = 와룡산은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 개 있다고 해서 구구연화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의 머리-등-꼬리 순으로 거북바위, 사자바위, 기차바위, 민재봉, 새섬봉, 상사바위가 쭉 이어진다.

사자바위에서 바라본 전경.

산지 대부분은 육산으로 완만하지만 주능선에는 희고 우뚝 솟은 화강암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웅장한 산세를 연출한다. 능선을 따라 산행하는 동안 한려수도의 시원한 조망이 계속 뒤따른다. 그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용의 등에 올라타고 바다로 향해 날아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특히 용의 등 비늘같이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솟아오른 새섬봉(801m)을 오르내리는 동안이 클라이맥스다.

반대로 민재봉(798m)은 푸근한 느낌이다. 그동안 민재봉이 와룡산의 대표 봉우리로 알려졌지만 2009년 국립지리원의 해발고도 정정으로 정상의 자리를 새섬봉에 내줬다.

하지만 와룡산 가운데 허리 지점에 있어 오른쪽 새섬봉 쪽과 왼쪽 기차바위 쪽으로 팔을 뻗은 산세와 발아래 와룡마을과 와룡저수지, 그리고 멀리 점처럼 흩어져 있는 사량도, 신수도, 수우도, 늑도, 창선도, 남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와룡산 허리 지점에 있는 민재봉에서 철쭉이 필 즈음 전국등반대회가 열린다.

무엇보다 4월과 5월 진달래와 철쭉이 봉우리를 덮으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와룡산 철쭉은 '사천 8경'에도 꼽힌다. 철쭉이 필 즈음 이곳에서는 전국등반대회가 열린다.

◇'겸손' 깨달음을 주는 산 = 와룡산 산행길은 용머리 쪽인 와룡저수지에서 출발해 기차바위∼민재봉∼새섬봉∼상사바위 종주코스와 와룡마을 산불감시초소에서 덕룡사∼기차바위∼민재봉∼새섬봉∼도암재∼와룡마을로 회귀하는 축소코스가 대표적이다.

와룡산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전망이 시원하다. 오른편에는 상사바위, 산 아래에는 와룡저수지, 왼쪽 저 멀리에는 삼천포 시가지와 한려해상이 아스라이 보인다.

등산로 입구 와룡저수지 쪽에 서면 양쪽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능선까지 오르는 것도 금방이면 될 듯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착시에 따른 착각임을 깨닫게 된다. 가깝게 보였던 주능선에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높다. 역시 등용문이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이번엔 처음 밑에서 봤던것보다 더 멀리 높이 올라온 듯 느껴졌다.

순간 세상 사는 이치가 이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한없이 높게 여겨져 쉽게 거만해지고, 밑에서 위를 보면 생각보다 그 경지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져 만용을 부리거나 실수하는 것처럼….

반대편 능선에서 보면 민재봉과 새섬봉도 한달음에 달려 도착할 수 있을 것처럼 잡힐 듯하지만 지척에 두고 둘러가야 하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 한쪽까지의 거리만 생각해 잘못 계산한 때문이다. 종주에는 7시간가량, 축소코스는 대략 5시간 걸린다. 와룡산을 오르며 다시금 '겸손'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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