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미군 보고서 "미군 제주해군기지 전략적 접근"
강정마을 주민 입항거부 시위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만든 제주 해군기지. 얼마 전 이곳에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이 다녀갔습니다. 외국 군함으로는 처음이었지요. 그동안 강정마을 평화운동가들이 우려하던 제주 해군기지 미군기지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겁니다. 지난 13일 제주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오영훈·위성곤 의원이 국방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알뜨르비행장을 제주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국방부의 2009년 약속은 8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고,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미군 기지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던 국방부는 이제 와 미군의 줌월트 배치 공식 요청이 오면 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약속 파기와 말 바꾸기로 스스로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추락시키고 갈등을 격화시켜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지난 2013년 한 미해군 중령이 이미 사태를 예견한 보고서를 씁니다. 일은 그가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구럼비를 살리자며 시작한 강정마을 투쟁은 이제 동북아 평화운동으로 확대된 셈입니다. 관련기사 보시죠.

/편집자 주

지난 25일 미 해군 알레이버크 급 이지스구축함인 스테뎀함(USS Stethem)이 제주 해군기지를 찾았다. 17일부터 21일까지 동해 상에서 한·미 연합 해상전투단 훈련을 마친 뒤였다. 제주 해군기지에 외국 함정으로는 처음으로 입항했던 스테뎀함은 다음날 미 해군 7함대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 기지로 떠났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줄곧 반대해 온 강정마을회 등 평화운동 진영은 스테뎀함의 제주 해군기지 첫 기항이 미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구축함인 '줌월트(DDG-1000)'나 항공모함의 기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미 해군 제7함대에서 동북아 훈련 및 정책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J. 서치타 중령이 2013년 미 육군대학에 제출한 '제주 해군기지: 동북아의 전략적 함의'라는 보고서가 다룬 내용에 기인한다. 이 보고서엔 이번 스테뎀함 입항을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미 해군 함정의 첫 제주 입항 상황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서치타 중령은 보고서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한국 측의 초청 형태로 미 해군 함정을 보내야 한다. 알레이버크 급 구축함이 첫 기항에 적합하다. (중략) 알레이버크 급 구축함은 한국과 동맹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크고, 중국이 미국의 개입 증대로 인식하기엔 그 규모가 작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 USS 스테뎀함(DDG-63)이 25일 오전 서귀포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이어 그는 "첫 방문은 3일 이내로 짧아야 한다. 긴 기항은 지역 주민과 중국으로 하여금 항구적 함정 배치로 오인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중략) 미국 수병들은 최상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상에 나와 유니폼을 입고 손을 흔들며 입항해야 한다. 기항하는 함정은 다른 인근 기항지를 들렀다가 오는 형태여야 한다. 기항 전 오랫동안 바다에 머물렀다면 '승조원 휴식'을 강조할 수 있다. 한국 해군 도움으로 승조원들은 특히 이웃한 강정마을 등에서 가능한 한 많은 '컴렐(COMMREL-community relations)'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로 스테뎀함 승조원들은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정복 차림으로 함정 갑판에 나와 손을 흔들며 입항했고, 우리 해군도 100여 명의 장병과 군악대가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마스코트인 '바다벌'(Sea Bee)도 전면에 등장했고, 더글러스 펙허 스테뎀함 함장은 우리 해군이 섭외한 여자 어린이로부터 꽃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서치타 중령은 또 보고서에서 "첫 기항 뒤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중소형 함정들이 인천에 미해군 함정들이 기항하는 빈도만큼 제주 해군기지에 기항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다.

이어 "미국은 적당한 기회가 나타날 때까지 항공모함의 제주 기항을 아껴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되기 수년 전인 2013년 3월에 발표한 이 논문에서 제주 해군기지에 제7기동전단이 KDX-Ⅲ 구축함 등 20척의 전함과 함께 배치되고, 여기에 더해 한국 공군이 해군의 대양 작전 지원을 위해 탐색구조부대 기지를 신설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

그는 "미국의 방위에 대한 짐을 최대한 한국과 분담하도록 한국 당국을 북돋우고, 중국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협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며 제주 해군기지에 관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조쉬와 켈시 주한 미해군 사령부 공보실장은 서치타 중령 보고서의 미 해군 함정 제주 기항 내용과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문에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태호 해군작전사령부 정훈공보실장은 25일 기항 현장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마친 미 해군 함정이 승조원 휴식과 군수 적재를 위해 일시적으로 기항했다"며 "해군은 민군복합항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미 해군 함정을 포함해 외국 함정들이 언제든 일시적으로 기항할 수 있다고 밝혀 왔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날 스테뎀함의 입항에 대해 "평화의 섬에 파국을 몰고 올 것"이라고 반발하며 강정포구에서 입항 거부 피켓 시위를 한 뒤 기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강정마을회는 성명에서 "스테뎀함 입항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당시 미군이 이용하지 않는 순수한 대한민국 해군의 기지라고 했던 말은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강정마을회가 내건 미 해군 군함 입항 규탄 팻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