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많이도 걷는다. 만보기 하나 허리춤에 차고. 2000보, 3000보, 4000보. 어떨 땐 1000보를 걷기도 한다. 기사 컷이 '만보기'인데 왜 그것밖에 걷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일일이 대답하지 않겠다. '만보기' 취재를 시작하고, <우연한 산보>라는 만화책을 접하게 됐다. 지난 2월 11일 세상과 작별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그렸다. 원작은 그와 <고독한 미식가>를 함께 했던 구스미 마사유키.
'후기를 대신하여'라는 글과 사진을 더해 100쪽 남짓한 얇은 책이다. 출판사는 서평에서 "우연히 시작되는 산보를 따라 가서 되찾는 일상의 따뜻함이 이 만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소개한다. 일본 한 문구회사에 근무하는 중견 영업사원 우에노하라가 주인공. 그는 근무 중이나 휴일에 계획에 없는 산책을 한다. 짧은 여정 속에서 일상 속 다양한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만화 속 한 장면. 카레 가게 손님들이 오래된 골목 분위기를 살리는 방법을 토론한다. 한 손님이 가이드북을 제안한다. 누군가는 지역 출신 유명 가수에게 안내를 받는 투어 콘텐츠는 어떠냐고 묻는다.
그때 조용히 카레를 먹던 주인공이 말한다. "이런 골목길은 가이드북 같은 것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걷는 게 재미있는 거 아닌가요?(중략) 그리고 산책은 관광과는 다르죠. 목적 같은 거 없이 자기 마음대로 느긋하게 걷는 데서 오는 기쁨이거든요."
많은 지자체에서 관광 콘텐츠를 찾으려고 혈안이다. 예산을 쏟아부어 어떻게든 객을 끌어 모으려 한다. 좋은 곳은 알아서 손님이 찾기 마련이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소중한 자원을 보존하고 잘 가꾸기만 해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나는 관광보다는 산책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