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 할머니도 '사필귀정'이라는데
부관참시? 십상시 입과 무엇이 다를까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아니, 어쩌면 그 훨씬 전부터 어처구니없이 돌아가는 나라꼴, 이라고 쓰려다 관둔다. 파면 17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너무나 예의 바른 소시민이다. 물론 계층으로 따지면 좀 복잡해진다. 사회적 지위나 생활 정도를 따지면 하류층이지만 지식이나 학문 교양 따위를 따지자면 나름 시를 쓰고 강의도 하니까 지식층이다. 게다가 블랙리스트에도 버젓이 올라가 있으니까 말이다.

암튼 모범적인 소시민으로서 나는 나랏돈은커녕 길바닥에 떨어진 돈마저 넘보지 않는 깔끔한 사회구성원이다. 게다가 이따금 지나친 술과 담배로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내려고 노력하며 생각은 되도록 많이 하지 않는다. 별로 크지 않은 입은 말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먹는 데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명백하고, 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 또한 변변찮게 사는 꼴로 증명된다. 정치적이거나 현실적인 사고는 나와 가장 무관하다. 카드빚에 쫓기느라 미래의 꿈 따위의 관념과도 한없이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참으로 선량하고 모범적인 소시민인 것이다.

이런 소시민들은 종편을 보거나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모범적인 시민은 음식을 먹고, 그거면 됐다!'(로베르트 발저, 산문 '그거면 됐다!') 나는 별로 든 게 없는 머리를 쥐어짜 야비하게 먹고살 궁리를 하거나 입을 쥐어짜 욕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은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뭐, 굳이 예를 들라면 TV에 잘 나오는 윤상현, 김진태, 조원진, 홍준표 등이나 청와대 관계자 등등 소위 지금 이 나라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인물들에게 맡긴다.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무지나 무식은 곧 들통나게 되고 남의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 생각이 탐욕스럽거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 종족들은 십중팔구 천박하거나 몰상식하다. 그러므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선량하고 모범적인 소시민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산뜻하게, 머리 없이 생각 없이 산다. 해서, 나는 죄마저 없어 더욱 가난하고 그 어떤 일에도 책임이 없는데, 이 나라에는 나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입들이란 말인가.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소식에 노인대학에 노래 배우러 다니는 우리 옆집 할머니의 입에서도 '사필귀정'이란 말이 나왔지만, 국민을 대표해 금배지를 단 일부 국회의원 입은 역시 차원이 다르다. '부관참시'란다.(윤상현) 이에 질세라 역사소설까지 쓰는 입도 있다. "궁궐에서 쫓겨나 사저에서 눈물로 지새우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격"이란다.(김진태) 여성프레임을 내세워 역사드라마를 꿈꾸는 입도 있다. "이미 예순이 넘은 전직 대통령을 오랏줄에 묶어 산발하고 화장도 안 한 모습을 TV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이 우리 국민과 국가의 위상에 도움이 되는지" 합리적 판단이 결여돼 있단다.(정태옥) 나 같은 소시민으로선 참 끔찍한 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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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황제의 신임을 믿고 권력을 휘두른 10명의 환관, 즉 십상시(十常侍)의 입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에 가장 먼저 적시한 '사안의 중대성' 그리고 증거인멸 우려, 형평성 등의 사유는 안중에도 없는 입들이다. 해서, 입이 좀 더 멋진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권주자 후보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자유한국당 후보가 된들 초상집 상주 노릇밖에 더 되냐"(홍준표)고. 그거면 맞다! 나 같은 소시민들의 머리 위에서 새처럼 살았던 입들의 발인이다. "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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