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유적 유물 여행] (6) 헤라클리온 박물관 '벽화·조각'등 미노스 문명 한눈에
화산재 뚫고 나온 아크로티리 유적 '지상 속 낙원'연상

BC 1600~ 1500년, 당시 절정을 이루던 에게해 주변 고대 그리스 문명들이 한꺼번에 몰락합니다. 우리에게 산토리니로 더 잘 알려진 테라섬에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화산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테라섬에는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 문명과 교류하던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명이 있었습니다. 역사 이래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화산 폭발로 200m 높이의 해일이 지중해 연안을 덮칩니다. 화산재가 온통 하늘을 덮어 며칠 동안 암흑세계가 계속되었고, 무서운 폭풍우가 계속해서 몰아쳤습니다.

화산 폭발은 에게해에서 멀지 않은 북아프리카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기록된 '하느님이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이 사실은 이 화산 폭발에 따른 기상이변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테라섬 화산 폭발은 그리스 고대 문명들이 멸망하는 계기가 됐지만, 반대로 이들 문명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화산재가 땅 위를 두껍게 덮어버리면서 이들 문명의 유적들이 오랫동안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그리스 고대 문명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 거죠.

세밀한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크노소스 궁전 벽화.

◇고대 크레타섬의 세련된 난쟁이족 = 앞서 우리는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을 둘러봤지요? 이 궁전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은 오랫동안 화산재에 덮여 있었기에 원형을 보존한 것들이 많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나온 유적들은 현재 크레타 헤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에 잘 전시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헤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이 박물관은 10년 동안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지난 2014년 재개관했습니다. 선사시대에서 미노스 문명을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을 한걸음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에서 출토된 토기. 몸통에 불교 문양과 비슷한 만(卍) 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미노스 문명 사람들이 자신을 미노스인이라든지, 미노아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이 용어는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고 크레타 고대 문명을 연구한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레타 신화 속의 왕 미노스(Minos)에서 착안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헤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유물 가운데 미노스 문명, 즉 크노소스 궁전과 그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벽화입니다. 주로 자연세계와 궁전생활을 그려 놓았습니다. 앞서 미노스인들이 아주 키가 작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벽화를 보면 피부가 적갈색으로 된 사람도 있고, 흰색으로 된 사람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크레타와 문명 교류가 활발했던 이집트 벽화를 기준으로 적색은 남자, 흰색은 여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신분이나 역할의 차이에 따라 색을 달리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여튼 벽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큽니다. 허리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는 것은 어릴 적부터 허리를 강하게 묶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 합니다. 옷들도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됐습니다. 남자도 치마를 입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치마 앞으로 그물 같은 것을 두르고 그 끝에 납을 달았습니다. 당시에는 납이 아주 구하기 쉬운 금속이었다네요. 그런 게 몸에 안 좋은지도 모르고 옷에도 달고 건축 재료로도 쓰고 그랬다네요. 벽화에는 가슴을 드러낸 여성들을 그린 것도 많은데요. 이는 가이아 여신을 섬기는 사제, 즉 신녀(神女)들이랍니다. 이들의 화려한 머리 스타일, 귀걸이나 팔찌 등 장신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반도에 겨우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을 시기, 미노스 문명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문명을 만들어냈을까요.

의식을 할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황소 술잔.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으로 미노스 문명을 상징하는 유적 중 하나다.

◇화산재에 덮인 찬란한 문명, 산토리니 = 우리는 크레타섬에서 다시 크루즈를 타고 테라섬으로 향합니다. 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산토리니입니다.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 배 위에서 본 풍경만으로도 사랑하기에 충분한 섬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절벽 위 하얀 집들이 아닌 아크로티리 유적지를 먼저 둘러볼 것입니다. 섬의 중심도시인 피라 마을에서 배를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남쪽 아크로티리 마을로 향합니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20분 정도 걸립니다.

이곳에서 고대 도시가 발견된 것 역시 극적입니다. 1967년부터 그리스 고고학자들은 테라섬에서 고대 유적을 찾기 시작합니다.

땅속에 무언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화산재가 워낙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어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아크로티리 마을 근처에서 자연 침식으로 지하 수십 미터에 있던 유적 일부가 드러난 것을 발견합니다. 학자들이 이곳에서 발굴한 것은 무덤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드러난 거죠. 1, 2층으로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골목이 나있고, 상점도 있었고요. 가지런히 놓여 있던 침대도 있고, 심지어 배관까지 잘 설치된 수세식 화장실도 나옵니다. 실제로 유적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어느 시골 읍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유적지에서는 귀금속, 장식품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화산 폭발 징조를 눈치챈 당시 사람들이 미리 마을을 버리고 떠난 까닭이랍니다.

테라섬(산토리니) 아크로티리 유적을 찾은 관광객들.

화산 폭발 충격으로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채색벽화에서 보이는 고대 테라섬 사람들의 생활상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림들이 꽤 사실적인데요. 양손에 고등어 꾸러미를 들고 가는 어부, 한 손에 글러브를 낀 젊은 권투 선수도 있습니다. 어떤 그림에는 2층 집들이 늘어선 도시 자체가 그려져 있고, 양과 염소를 모는 털옷 입은 목동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 역시 크레타 미노스 문명처럼 세련됐습니다. 산토리니, 아니 테라섬 사람들이 몇십 년 전만 해도 신발도 못 신거나 집에 화장실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아크로티리 유적은 마치 환상 같기도 합니다. 테라섬 고대 유적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사라진 대륙, 지상 낙원 아틀란티스가 테라섬일 것이라는 학자들의 상상이 영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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