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기자가 만난 농협 CEO] (16) 창원 대산농협 정의일 조합장
인사 개입 차단·법인카드 자제 등 투명한 운영, 최대 순이익 성과
"농민 생산 품목, 농협이 다 팔아야"
쌀·파프리카 등 마케팅 활동 앞장
'도시 협약·수박 고급화' 새 과제로

불법·금품선거라는 꼬리표를 떼고자 2015년 전국 모든 단위 조합이 동시에 임원을 선출했지만 선출된 농협 조합장 상당수가 당선 무효 형을 잇달아 선고받았다. 농협 신뢰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농협 직원들의 갑질, 권력화, 피폐해지는 농민을 보며 '내가 조합장이 되면 더욱 낮아지겠다'고 다짐한 조합장이 있다. 창원시 대산농협 정의일(58) 조합장은 인터뷰 내내 "사심 없고, 투명하고, 봉사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순서 바뀜 없이 되풀이 했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기도 하고 신념 같기도 했다. 기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하는 말임은 분명해 보였다. 취임 후 조합장 업무용 차량을 없앴다. 법인카드로는 월 50만 원이 쓸 곳이 없다고 말한다. 농협 내 조합원 각종 지원금 서류 신청을 돕는 전담 직원을 뒀다.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총괄 상무가 여성이다. 정 조합장의 '작은 개혁'은 변화를 불러왔다.

▲ 창원 대산농협 정의일 조합장. 정 조합장은 '조합원에 대한 예의와 투명한 조합 운영'을 강조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

◆"농민이 어려우면 농협도 어려워야 한다" = 정 조합장이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건 단 한 가지다. "조합원들이 찾을 때 부모님 대하듯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다. 창원시 대산면은 7000여 명 인구가 있고 이 중 65%가 농경 인구다. 대산면에 아파트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개발에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시설하우스를 재배하는 젊은 농가도 있지만 결혼하면 인근 김해 진영으로 나간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농협을 찾는다.

"조합원 중에는 학교를 마치지 못해 글을 모르는 이들도 많고, 지원사업을 신청하려 해도 행정기관과 일대일로 부딪치면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작은 부분부터 바꿔나가고 싶었습니다. 정식 발령을 낸 건 아니지만 지원사업을 상담·문의하고 서류 작성하는 전담 직원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서류에 사인만 하면 현대화시설 등 각종 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술센터에서 자료를 받으면 문자로 알리고 전화해서 일일이 사업을 알려주니 조합원들이 좋아합니다."

정 조합장은 10여 년 전 농협 이사로 활동하다 조합장과 갈등으로 중도 사퇴했다. 말라가는 농민은 뒤로한 채, 살찌는 농협 직원에 쓴소리를 쏟아냈고 관행인 분식회계를 지적했다. 조합장 인사 개입에 의문을 던졌다. '내가 조합장이 되면 적어도 이렇게 운영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 차곡차곡 쌓였다.

"농민이 어려우면 농협도 어려워야 합니다. 농협 달력에서 늘 소 달구지 사진을 보면서 농민과 농협은 같이 발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어요. 농협은 부자고 농민은 가난했습니다. 조합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대여비가 월 100만 원씩 들어가는 업무용 차량을 폐기하고 제 자가용을 타고 다닙니다. 공적인 업무만 법인카드를 써서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술집이나 커피전문점에서 결제를 한 적이 없어요. 투명한 운영을 강조하다 보니 직원들이 달라졌고 조합원들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대산농협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0억 9700만 원을 올려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조합장의 변화가 직원, 조합원으로 도미노처럼 번진 효과다.

농협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조합장으로 취임한 이후 3명의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같은 일 하면서 차별을 받아선 안 되죠. 아직 한 명이 남았는데 올해 모두 전환할 계획입니다. 작년에 적법한 자리는 둘이고 해당 직원은 세 명이어서 마음고생이 조금 있었습니다. 자식을 정규직으로 시켜달라고 읍소하는 부모도 있었고요. 이때 조합장이 관여를 하면 안 됩니다. 이사회에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조합장이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잡음 날 일이 없습니다."

정 조합장은 대산면에서 태어나 현재 파프리카 시설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힘겹게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늘 안쓰럽게 여겼다. 대산면에는 어머니와 같이 남편 없이 홀로 농사를 짓는 여성농업인이 많다. 이들에게 유독 애착을 뒀다.

"취임 이후 사비를 들여 혼자 있는 여성 농민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남자 인력이 없어 어려운 점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도 했습니다. 홀어머니를 옆에서 봐왔고 어려움을 잘 알기에 위로를 했더니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식사 한 끼로 마음이 통했다고 해야 할까요? 여성 조합원을 초청해 오페라 등 문화 공연도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챙겨주는 농협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혜택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는 조합원 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정의일 조합장. /박일호 기자

◆"장사꾼이 되겠다"던 공약 = 정의일 조합장은 "우리 농산물의 활용과 소비를 활성화하고 방법을 이끌어 내는 것도 자식 키우는 일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농산물 소비촉진 마케팅 활동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우리 지역의 우수 농산물 판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표 공약이 농산물 판매 안정화였다. 대산면은 쌀은 기본이고 파프리카,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 단감, 멜론, 호박, 풋고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창원시에서 이렇게 다양한 작물이 나오는 곳도 드물 정도다. 농민들이 수확하면 거둬들이고, 선별·포장·판매는 농협 몫이다. 소량 품목까지 신경을 쓰고자 하니 어려움은 따른다.

"농협 설립 목적에 보면 농민 생산 품목은 농협이 다 팔아줘야 한다는 취지가 나옵니다. 설립 목적대로 하려고 합니다. 품목에 따라 손해를 보더라도 판매만큼은 농협이 책임지려고 합니다."

정 조합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안은 로컬푸드매장이다. 옛 39사단 인근에 남창원유통센터 같은 대형 직매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파프리카를 대산농협에서 직거래하면 5㎏에 2만 원(대형마트 구매 3만 원)입니다. 도시농협과 달리 농촌농협은 사업 투자 여력이 없습니다. 도시농협과 협약을 맺어 지분 형태로 참여해 직매장을 운영하게 되면 농민은 수수료와 물류비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 역시 신선한 농산물을 싸게 먹을 수 있어 일거양득입니다. 수도권에 집결해 내려보내는 식의 유통방식으로는 참박과 접목한 대산 수박의 진가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대산 수박 고급화 전략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 조합장의 투명성과 세심한 노력은 2016년 수상으로 이어졌다. 2016년 농축협 종합업적평가 1위, 상호금융평가 1위, 우수조합장상, 우수경영자상, 업적우수 특별승진 3명 등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