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가 3·1기미년 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위패를 모셔 합동대례제를 지낸 것은 그 자체만 두고 보면 만시지탄의 애석함이 없지 않다. 민족대표들은 종단과 종파를 초월한 종교계 지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불교계 인사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그중에는 해인사 용성선사가 포함돼 제례를 주재하는 명분으로는 손색이 없어 더 일찍 그런 행사를 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따른다. 그런데 흠이 하나 생겼다.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 중 3명이 변절하여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로 판명난 것이다. 감리교 목사였던 정춘수는 내선일체의 식민지정책과 신사참배에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부역함으로써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는 비운을 자초했다. 중추원 참의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 사장을 지낸 최린 역시 적극적인 친일 전력으로 천도교에서 파문당한 인물이다. 박희도 또한 앞의 두 사람과 비슷한 행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3인 모두가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이 엊그제 일이 아닌데도 같은 반열에 넣어 함께 추모의 염을 기렸다 하니 신중치 못했던 탓으로 여겨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해인사와 자치단체가 제례의 당위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세목별로 따져야 할 공과관계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 시행착오가 아닐까 한다. 주최 측이 놀란 나머지 제례행사를 중단하겠다는 취지의 극약처방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래서야 하겠는가. 옥석을 가리지 못했다 하여 제례 그 자체를 중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비단 3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애국애족하는 충정의 일념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가 나중에는 심경 변화로, 혹은 끊임없는 회유와 반대급부에 굴복해 변절함으로써 민족을 등졌거나 적극적 부역자가 된 경우가 있어 제례에서 제외해야 하는 대상이 더 많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만에 하나라도 지조를 굽혀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에게도 향을 불 지펴 넋을 기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내년 제례 때까지 차근차근 진실규명 작업을 벌여 걸러내기를 하는 것만이 능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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