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회
자본 동원 일방 합의·추진
사회적 제도 작동 못해…인간 자존감·삶 무너져

"참…, 분열 이러면 우아한 소리고. 그냥 동네가 박살이 나고 쪼가리 났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발표한 <밀양 765㎸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공동체 해체 관련 구술조사 결과보고서>에 담긴 경과지 주민 증언이다. 초고압송전탑 건설로 빚어진 '밀양 사태'의 가장 큰 고통은 오랫동안 형성된 마을공동체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이웃들이 등졌고,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깊어지고 있다.

연구자는 밀양 사태에 대해 '사회적, 공적 시스템이 제어하거나 방어하지 못했을 때 인간의 자존과 공동체적 삶을 무너뜨린 참혹한 사례'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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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국회에서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발간·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우원식·권칠승·김경수·박재호·송기헌 국회의원, 민변 환경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23일 국회에서 '밀양 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 발간·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경수(더불어민주당·김해 을) 의원이 용역 발주해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올해 1~2월 진행한 것이다. 조사는 연구자들이 직접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을 만나 증언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짓밟힌 인간의 존엄 = 김영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송전탑 추진 과정에서 문제점으로 △정보공유와 협의 과정 공공성 결여 △자본과 공적 권력을 동원한 일방적 합의 △마을 자치역량 훼손과 마을공동체 해체 등을 꼽았다.

조사팀은 밀양에서 '자본이 인간 존엄을 조롱하고 무너뜨리는 참혹한 방식'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밀양에서 사람과 마을이 가진 가치는 합의서 한 장의 가치로 환원됐다. 이 경제 논리 속에 마을공동체는 무너지고 사람의 존엄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밀양이 겪은 고통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연대자의 노력을 통해서였지 사회 공공영역과 시스템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었다"며 "더구나 물리적 폭력이나 부조리만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관계의 파탄과 공동체 파괴에 따른 심리적 상처 문제까지 다룬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 지난 2015년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 기념문화제'에서 연설 하는 송전탑 주민들./경남도민일보DB

김 교수는 밀양 주민 증언과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종합하면 '한전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군산 새만금, 청도 삼평리, 강원도 횡성지역 송전탑 반대 주민도 참석해 밀양과 비슷하게 벌어진 공동체 파괴 상황을 증언했다.

한전 대응 순서를 보면 △주민 성분 파악 후 1 대 1 대응(한전 직원 마을 파견+공무원 협조) △이장·반대운동 대표자 포섭 △마을 내부 협력 주민 구성 △협력 주민에게 권한 부여와 보상 △개별 보상과 마을 보상으로 차등 지급 △자녀 등 약점 파악해 압박 △주민 간, 마을 간, 반대운동 주민 간 내부 갈등 유발 △분열된 후 다시 개별 접촉 시도 등으로 정리된다.

주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주민 5명이 대표를 맡아 보상을 주도하고, 마을단위 보상금 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마을 자치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주민은 '원수 같은 돈'이라고 말할 정도다.

김 교수는 "송전탑 찬성 반대 갈등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외상은 이웃에게 폭발하고, 축적된 심리적 외상, 사회적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고통이 사소한 갈등마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을 전체가 화약고"라며 "공개된 자리에서 폭언과 모욕·조롱 등이 반복되는데 사회적 관계는 이미 회복 불능 상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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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국회에서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발간·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우원식·권칠승·김경수·박재호·송기헌 국회의원, 민변 환경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지난 2005년 주민설명회 이후 현재까지 밀양 사태는 '진행형'이다. 12년 동안 마을은 풍비박산, 거대한 철탑이 솟았지만 150여 가구는 한전과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돈에 굴복하는 이웃을 지켜보는 일, 돈과 권력이 마을을 찢어 놓는 일을 목격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나의 자존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며 "이미 끝났다고 하는 싸움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존과 존엄을 지켜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봤다. 

최재홍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장은 이날 ‘밀양 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의 구조와 정책 대안’을 발표했다.

최 위원장은 밀양처럼 마을공동체가 파괴된 상황을 치유하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갈등 상황에서 국민 기본권 침해를 예방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공공정책 및 공공사업 갈등조정 지원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는 갈등 조정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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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국회에서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발간·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우원식·권칠승·김경수·박재호·송기헌 국회의원, 민변 환경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와 함께 △사업결정 단계에서부터 주민 참여·정보공개 △공익사업에 따른 피해 보상과 주민 상생방안 협상 제도화(제3의 공적기구) △반인권적 협상 방법과 보상 집행 규제 등 제도 개선도 제안했다. 특히 밀양 사태 마을공동체 파괴와 관련해 한전에 대한 감사와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공공사업 갈등조정 지원법을 만들어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주민 참여가 보장돼야 하고, 갈등 해결 과정에서는 공공정책 또는 사업이 중단돼야 한다”며 “기초적 사실관계에 대한 갈등 조절기구 조사권과 갈등 조정 절차와 조정안 위반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우원식·권칠승·김경수·박재호·송기헌 의원, 민변 환경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열었다. 밀양대책위는 “지난 12년간 공기업 한전과 정부에 의한 심각한 폭력에 마주 서야 했던 밀양 주민의 고통은 청산해야 할 ‘적폐’의 가장 적나라한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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