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주인인 나라 죄 있으면 죄 물어야
잡초 초벌부터 막는 상농의 김매기 기대

모처럼 화창하고 포근하다. 봄날이 제대로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거제 봄은 구조라 춘당매가 불러오고 공곶이 수선화에 반해 무르익는다. 봄을 맞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공곶이 봄 구경을 나섰다. 고개를 넘어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통꽃으로 툭툭 떨어진 동백꽃이 처연하기는 하다. 앞서가던 노부부가 동백 몇 송이를 주워들고 말씀을 나누시는데 한숨까지 섞어가며 꽤 심각하다.

들어보니 이 좋은 봄날에 시절 되짚는 넋두리다. 흉하게 부모 잃고도 나랏일에 몸바쳐 일했는데 사람 잘못 써서 문제 생겼다고 쫓아내 이제 죄를 묻는다니 억장이 무너진단다. 봄바람 마시러 나왔다가 되레 숨이 턱 막힌다. 옛 임금조차도 패덕하면 파도가 배를 뒤집었는데 당연히 물러나와 벌을 받아야지요…. 한마디 거들고 지나치는데 오동지 섣달 칼바람이 등짝에 내리꽂힌다. 저런 빨갱이 같은 것들 때문에 나라 꼴이 엉망이란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에서 죄가 있으면 법에 따라 폐출하고 그 죄를 물어 벌을 받아야 한다. 설사 대통령 할아비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엄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검찰 조사를 받는데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춰 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파직된 그는 전 대통령 이전에 한낱 필부일 뿐이다.

맹자에게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탕이 하나라 폭군 걸왕을 내치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폭군 주왕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답하기를 "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니 다시 묻는다. "신하가 임금을 죽였습니다. 그게 옳은 일입니까?" 여기서 명답이 나온다. 맹자 왈 "어진 것을 침해한 자를 도적이라 하고 의로운 것을 침해한 자를 잔학하다 합니다. 그런 잔인한 도적놈은 그냥 한 명의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 하나를 죽였다고 들었지 임금을 죽였다는 소리는 전해 듣지 못하였습니다."

어진 것과 의로움을 해친 군주는 잔인한 도적인 한낱 필부일 뿐일진대 예우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러고도 비선 실세니 뭐니 하는 제가 수족처럼 부리던 사람들에게 모두 떠넘기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굴고 있다. 백보를 물러서 죄가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 죄를 청함이 옳거늘 하물며 불 보듯 드러났건만 그 후안무치를 견줄 자가 없다. 부리는 신하를 보면 그 군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죄를 물어 처벌하는 이들은 죄지은 자 지위가 높거나 그 드러난 죄가 크고 무거울수록 말 그대로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으뜸 농사는 벼농사다. 우리 식탁은 밥상이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망치게 하는 게 여럿 있는데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잡초다. 초벌 논매기에서 어린 잡초를 다잡지 못하면 뿌리가 깊이 박힌 두벌매기가 어려워진다. 두벌매기에 소홀하면 내년 농사까지 망치게 한다. 그런데 이 김매기 철이 더운 한여름이라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뙤약볕에 까치 머리가 벗겨지고 폭우가 등짝에 깨 볶는 소리로 쏟아진다. 그냥 걷기도 어려운 무논에서 벼 잎에 쓸려 팔다리는 벌겋게 화끈거린다. 이러니 게으른 머슴은 주인 눈치를 보게 된다. 제대로 김을 매자면 일일이 뿌리째 뽑아 논둑으로 들고 나와야 하는데 잡초는 확실히 제거되지만 일도 더딜뿐더러 사람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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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게으른 머슴은 잡초를 발로 밟아 무논 진흙 속에 처박아 버린다. 아직 잡초가 어린 초벌매기에서는 이 방법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잡초 뿌리가 깊어진 두벌, 세벌매기에서는 일부 죽지만 대부분 되살아나 풀 농사를 짓게 만든다. 상머슴은 주인에게 굼뜨다고 지청구를 듣고 몸이 고되더라도 제대로 뽑아낸다. 상농은 풀을 보지 않고 김을 매고 중농은 풀을 보고서야 김을 매며 하농은 풀을 보고도 김매지 않는다. 상머슴, 상농이기를 바라는 모처럼 화창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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