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결과에 연구 더욱 장려
일본 NIMS 우리와 다른 운영정책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송(宋)나라에 빨래를 가업으로 하는 집에서 한겨울 얼음 시냇물에도 손이 트지 않는 약(不龜手之藥)을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야심 있는 한 사람이 비싼 값에 그 약을 구입했다. 그러고는 월(越)나라와 앙숙인 오(吳) 나라에 가서 전쟁에서 승리할 비법이 있다면서 장수가 되었다. 열심히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마침내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자 그 약을 바른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을 걸어서는 창도 방패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대를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때만 되면 '세금 먹는 하마' 또는 '밑 빠진 독'이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는 정부출연연구소를 변명하고자 한다. 필자도 그 기관의 일원이기 때문에 다소 객관성을 상실한 어느 정도는 비약도 내재한 하소연쯤으로 들어주셔도 좋겠다.

이웃 일본에 NIMS(National Institute of Materials Science)라는 연구소가 있다. 그 연구소에는 지금 필자가 수행하는 연구와 유사한 일을 하던 연구자가 있다. '하던'이라는 시제로 눈치를 챘겠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연구의 대상인 물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그 물질을 좀 변형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야말로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이다. 똑같은 약을 써서 누구는 빨래로 연명하고 누구는 대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동일한 물질을 연구하는데 누구는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는데 누구는 큰 저작권료를 받는 응용 방향을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자 그럼 지금의 이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는지 변명을 하겠다. 물론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도 연구자 개인 능력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것도 한몫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연구소를 운용하는 정책의 차이라고 감히 진단해 본다.

NIMS에서는 '이런 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볼까' 하면 연구가 가능하다. 즉, 우리의 관리기관이 요구하는 연구과제에 대한 시장의 규모, 연구의 필요성 및 중요성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5년짜리 연구과제면 과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연차별 목표와 내용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고, 연차평가 때 처음 제출한 그대로 되지 않았다면 추궁 당하기 십상이다.

반면 NIMS에서는 일단 연구를 시작해 보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면 이 결과가 오히려 더 흥미로우니 연구목표가 아니라 아예 연구주제를 바꾸겠다고 해도 양해가 된다고 한다. 아니 양해가 아니라 장려를 한다는 것이 NIMS 직원의 입으로부터 듣는 믿지 못할 이야기이다. 이런 것이 흥미로우니 시작해볼 수가 있고 중간에 이상한 결과가 나오면 그것까지도 더 깊게 파헤쳐볼 수 있는 연구의 자유도가 주어지는 것이다. 연구란 것이 원래 계획한 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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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구관리 정책이 이렇게 높은 연구 자유도를 허락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경제 및 산업 규모와 과학기술의 수준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니 비록 우리의 형편이 그들처럼 좋지는 않을지라도 조금씩 점진적으로 연구 자유도를 허락해주는 정책을 펼쳐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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