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필자의 중학생 시절 어느 날 국어시간이었습니다. 이상(李箱)의 수필 <권태> 수업 도중 선생님은 생뚱스레 동일인의 수필인 <산촌여정> 속의 물맛도 알아야 한다면서 몇 구절을 외웠습니다. "…얼마 있으면 목이 마릅니다. 자리물-심해처럼 가라앉은 냉수를 마십니다. 석영질(石英質) 광석 냄새가 나면서 폐부에 한란계 같은 길을 느낍니다." 글에 취했던 선생님이 하필이면 나더러 물었습니다. "야, 잘 들었지? 너 그 물맛이 어땠는지 말해 봐." 나는 얼른 장전한 심술탄을 총알처럼 쏘았습니다. "그 물맛은 선생님 편이지 제 편은 아닌데요." 얼굴이 벌게진 선생님은 "무식한 놈"이라며 머리를 콱 콱 줴박았습니다.

머리에 알밤을 맞으며, 나는 여름날 갓 길어 온 샘물에다 푸석한 꽁보리밥을 말아 풋고추·된장과 함께 먹는 그 맛을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 일화 속 그 샘물이 문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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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강 사업이 자초한

재앙 가까운 물의 오염

온갖 폐기물로 중병 들어

회복 가망 잃은 지하수

살처분

가금류 산적해 썩어

엎친 데 덮친 꼴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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