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한양을 중심으로 조선 8도의 각 변방을 잇는 10대로(大路)가 있었다. 즉 관서대로(의주), 북관대로(경흥), 관동대로(평해), 봉화대로(봉화), 강화대로(강화), 삼남대로(해남), 영남대로(동래), 충청수영로(보령), 수원별로(수원), 통영별로(통영)였다.

이렇게 한양에서 통영에 이르는 길이 조선의 10대 간선도로에 속했음은 임진왜란 이후 남해안 방비의 중요성과 함께 '삼도수군통제영'의 비중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통영별로를 약칭해 통영로라 했으며, 이 가운데 특히 통영과 고성을 잇는 20㎞ 구간을 통제사가 한양으로 오가던 길이라 하여 속칭 '통제사길'이라 했다.

통영과 고성의 중간에 위치한 가장 크고 높은 고갯길이라 하여 한티(汗峙) 또는 대치(大峙)라 불린다. 통영시 도산면 관덕리 고갯길 양면에는 암각비(岩刻碑)가 있으며, 서쪽 숲에 있는 큰 바위에는 '통제사 구공현겸 세세유택 세세불망(統制使 具公顯謙 世世有澤 世世不忘)'이라 새긴 글이 뚜렷하다. 구현겸 통제사(1774~1775년 재임)의 선정을 통영 군민이 영원토록 잊지 않겠다는 당시 세운 불망비(不忘碑)다. 불망비 아래쪽 큰 바위엔 글자가 새겨진 흔적이 있는데 1786년(정조10) 역모에 가담한 죄로 처형된 구명겸 통제사(1781~1783년 재임)의 선정비로 추정된다. 옛날 죽은 통제사가 귀신으로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일명 '귀신비' 또는 '구신비'로 불리었다.

통제사 옛길은 산세가 수려한 도덕산과 벽방산으로 계곡이 있는 산골짜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백우정사가 있고, 절 아래쪽에는 오솔길 따라 걸으며, 제법 큰 저수지가 운치를 더해준다. 옛날 통제사가 한양으로 오갈 때 땀을 식히며 쉬어가던 한티재에는 정자가 들어섰고, 고개에서 사계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최근 개설됐다. 1960년대에는 고성 우(牛)시장에서 소장수들이 소를 2마리씩 몰고 고성읍에서 월평리, 원산리 오산, 원동마을을 거쳐 한티재를 넘어 통영 우시장까지 왔다. 도산면 원산리 원동마을에서 한티 고개를 넘어 구현겸 통제사 불망비까지는 통영문화원의 역사탐방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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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통제영지를 1603년에 통영시 문화동에 세운 이후, 1895년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유지되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세병관을 제외한 백화당·정해정 등의 건물이 사라진 상태다. 완연한 봄을 맞아 조선시대 통제사가 한양으로 오갈 때 걸었던 통제사 옛길을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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