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할아버지·문구점 할머니 얘기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 아닐까

이달 들어 학교가 개학하면서 문구점에서 과자 주문이 늘어난다. 목요일에 한 문구점을 방문하는데 주차공간이 심하게 경사져 늘 위험하다. 매번 간 김에 잔뜩 물건을 내리고 방문횟수를 줄여본다. 차량 옆문을 열고 닫으면서 물건을 분주하게 내리는데 탑의 반대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 경사 때문에 한쪽으로 밀어놓은 문이 저절로 닫히면서 손잡이를 쳐 손잡이의 한쪽 나사가 부러져 버렸다. 매번 번거로운데 역시나 번거롭게 되어버린다. 신학기라 바쁘고 카센터에서 고치기도 그렇고 거리에 보이지도 않는 철물점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고칠 생각 없이 불편한 대로 바쁜 영업에 다닌다.

지난 토요일에 서울 도봉동 할아버지·할머니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를 방문한다. 물건을 내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할아버지부터 찾는다. "할아버지 내 차 좀 고쳐주세요." 어제 분명히 휴대전화에 충전기를 꽂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배터리가 바닥이다. 급한 대로 할머니에게 휴대전화 충전을 부탁해본다. 10분이나 지나서 할아버지는 보물처럼 간직하는 연장통에서 규격에 맞는 나사를 찾아서 차를 고쳐준다. 아쉬운 대로 휴대전화 배터리도 바닥에 노란 선 하나가 채워진다. 감사하다고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꺼내서 할아버지에게 건넸지만, 할아버지가 사양하는 바람에 내가 나에게 대접한다. 멋쩍어서 할머니 몰래 1000원짜리 한 장을 감춰둔다.

살면서 보람이나 남을 돕는다는 것이 그렇고 아직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필요한 사람이란 것은 언제나 소중한 의미다. 두 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마흔이 된 아들이 최근에 장가를 가서 손자를 낳았다. 장가가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해서 빚으로 시작한 아들의 결혼과 출산은 축복과 금전적인 부담을 동시에 안겨준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나 잘살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다.

화물차를 운전하던 할아버지가 아프면서 몸이 홀쭉해졌다. 원래 백발인데 검게 염색한 머리가 꼭 가발처럼 엉성하다. 공단 내 화물일거리가 줄어서 일이 없었는데 이제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가 힘이 없다. 할아버지의 염색한 검은 머리는 아직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인데 꼭 가발 같다.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는 엉성한 가발.

내가 붕어빵을 좋아해서 앞집에서 2000원어치를 사면 절반을 갖다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걸 먹지 못하신다. 할머니가 물건 욕심이 많아서 늘 가게 구석구석 애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가 있었는데 겨울방학 동안 줄었다. 외진 곳이라 반품이 많아서 메이커는 큰 마트에서 1+1행사 하면 몇 개씩 사다가 텅 빈 진열매대 상단에 올려놓는다. 팔리지 않으면 먹고, 주말에 아들 집에 갈 일이 있으면 챙겨간다. 벌이가 적어서 돈을 쓰지 말아야 하는데 두 분이 병원에 다니면서 겨울방학 내내 놀면서 100만 원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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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외상이란 게 사람에게 말을 어렵게 만든다. 마른침을 삼키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게 한다. 장사가 안돼서 한 번, 갑자기 돈 쓸 일이 있어서 한 번, 그리고 할 말이 없는데 한 번 더 외상 해야 할 때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을 유지할 수 있는지 마음에서부터 의심이 생겨난다. 그리고 의심이 확신이 될 때 비탈길에 세워놓은 자동차 문짝처럼 마음이 내려앉는다. 마음이 손잡이 나사처럼 부러진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나사못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에게 상대방이 살아가는 의미를 지지해주는 것. 어쩌면 우리 삶을 유지하는 것은 작은 나사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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