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7) 창녕
정상이 분화구인 화왕산
가파른 바위 절벽 구룡산
두 산 이어진 산세 '그림'
언제 가도 좋은 백미 구간

통영 대표 음식 하면 '충무김밥'이 떠오른다. 통영에 가면 왠지 충무김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른 맛난 음식이 많은 데 말이다.

창녕의 산 하면 화왕산(火旺山·756m)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어서 억새가 연상된다. 그래서 화왕산은 꼭 늦가을에 억새를 보고자 올라야 하는 산으로 느껴진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짜장면을 시키려고 하면 짬뽕이 더 맛있을 것 같고, 짬뽕을 먹고 나면 짜장면을 시킬 걸 하는 후회를 흔히 하게 된다. 이럴 때에 맞춰 나온 메뉴가 '짬짜면'이거나 '세트메뉴'다.

늦가을이 아니지만 창녕의 산을 찾아 억새풍경 그 이상을 느끼고 싶을 때 가는 코스가 화왕산∼관룡산(觀龍山·754m)∼구룡산(九龍山·741m)으로 이어지는 '화왕지맥'이다. 산객이 붙인 이름이지만 사계절 내내 창녕산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세트메뉴인 셈이다.

억새평원이 화왕산 대표 풍경이라면 구룡산은 칼날처럼 솟은 암봉들이 일품이다. /유은상 기자

◇장르가 다른 화왕산 = 화왕산은 창녕읍과 고암면에 걸쳐 있다. 산정 평원은 둘레가 대략 4㎞에 이른다. 경계면을 따라 가야시대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이 있다. 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분전지로 알려졌다. 창녕읍 쪽 서쪽에는 목마산성(사적 65호)이 잘 보존돼 있다.

정상 평원 내부에는 약 18만 5000㎡(5만 6000여 평)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3년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억새 태우기 행사가 열렸지만 2009년 인명사고가 발생해 폐지됐다. 남문 터 쪽에는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삼지(三池)가 있다.

화왕산 절정은 억새가 만발한 늦가을이지만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피고 여름이면 초록 억새가 눈을 싱그럽게 한다. 겨울에도 꽃이 다 떨어져 나간 억새 줄기가 전혀 앙상하거나 애처롭지 않다. 오히려 바람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 놓은 것처럼 더 정갈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경치도 화왕산 자체의 이색적인 산세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고만고만한 풍경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화왕산의 비교우위는 산세에 있다.

우리나라 산 대부분은 바다나 육지가 솟아오른 뒤 천천히 침식되면서 형성됐다. 반면 화왕산은 백두산, 한라산처럼 화산 분화구였다. 태생이 다르니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다. 녹음이 짙은 계절에는 목초지가 펼쳐진 유럽 고원지대 느낌이 있고, 겨울에는 제주도 오름의 풍경이 배어 있다. 산은 대략 기암절벽이 빼어난 곳, 정상 조망이 뛰어난 곳, 계절별 꽃이 유별난 곳, 바다 풍경을 즐기는 곳 등 각각의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화왕산은 확연히 장르가 다르다. 도내에서는 그나마 황매산(黃梅山, 합천·산청, 1108m)이 유사한 풍경을 가진 듯하다.

◇관룡산·구룡산 = 화왕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이 관룡산이다. 화왕산성 동문∼허준 드라마세트장∼옥천삼거리를 따라 완만한 임도를 40분가량 걸으면 정상에 이른다.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그때부터는 예사롭지 않은 암릉을 마주하게 된다. 바위절벽 오르고 내리기를 30분가량 하면 다시 구룡산에 닿는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관룡산과 구룡산은 따로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불린 것으로 보인다. <해동지도>에는 구룡산으로, 화왕산 오른편에 바로 표기돼 있다. <여지도서>에는 필봉으로 기록됐고, <1872년 지방지도>에는 대이산(大耳山)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봉우리마다 제 이름이 새겨진 표석이 자리 잡고 있다.

구룡산(관룡산)은 원효대사와 얽힌 전설이 남아 있다. 원효대사와 제자들이 백일기도를 마친 날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화왕산 꼭대기 삼지에서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났다. 이 용들은 영롱한 오색구름을 타고 날다 구룡산 쪽에서 승천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해서 절 이름을 관룡사로, 그 뒷산은 구룡산이라 했다 한다.

관룡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벼랑 위 바윗길 연속이다. 쭉쭉 갈라져서 하늘로 치솟는 바위들이 즐비하다. '창녕의 금강산'으로도 불린다. 칼날 같은 벼랑 위를 네발로 오르내리는 등산 묘미도 만만치 않다.

이 일대 바위구간을 병풍바위라 일컫는데 관룡사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구름이 낀 날에는 이들 봉우리가 마치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용처럼 보였을 것이다. 절 이름이 관룡사로 붙여진 이유가 쉽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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