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숲 어우러져 하늘빛이 물빛되고


거창은 독특한 고장이다. 경남의 가장 북쪽에 있어 뭔가 고립돼 있을 듯하지만 여러 모로 활발하다.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스스로 활동을 벌이면서 고장을 지키는 게 남다르다.
군 단위로는 드물게 극단(입체)도 있고 해마다 8월이면 국제연극제를 지역 이름으로 펼치는 것도 예사는 아니다. 풍물패(온누리 한마당).노래패(새날)와 문화답사모임(예벗)이라든지 문학.미술.사진.민속에서도 제각각 단체를 이뤄 열심히 일을 벌인다.
지난 14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지역 11개 단체가 거창에 모여 ‘경남연극제’를 벌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경남연극제가 그동안 진주.마산.창원.통영.거제 등 시 지역에서만 열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군 단위에서 개최된 것이다.
날마다 저녁 7시 30분이면 거창문화센터에서 연극제의 막이 오른다. 일찌감치 오전에 거창을 찾아 한 때를 보낸 다음 연극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어떨까. 평일 하루를 통째로 비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주말에 식구들과 함께 거창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
많은 사람들은 거창이라면 ‘수승대’부터 떠올린다. 구연서원과 거북바위가 있고 무엇보다 풍성한 물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승대로 물줄기를 대주는 상류도 빼어나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월성계곡. 1860년대 김정호가 일생을 바쳐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월성산(月星山)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10여km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수승대의 그 풍성함을 받쳐주고 있다.
길 따라 가다 보면 마을이 세 군데 나타난다. 아래쪽에서부터 창선.월성.황점 마을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마을 근처에 있는 다리둘레를 따라 가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풍경과 넉넉한 물을 만날 수 있다.
골짜기는 크고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너럭바위가 물웅덩이를 만든 채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과연 좋은 건축석재가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답다.
창선을 오른쪽에 끼고 지나다가 길 왼편을 보면 신기하게 생긴 모습에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한편으로는 바위산이 바짝 다가서 있고 골짜기에서는 바위를 구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배경도 탁 트였고 생김새도 멋있어 이곳저곳 더듬어 봤더니 널따란 바위에 ‘분설담’(噴雪潭)이라고 새겨져 있다.
눈을 뿜어내는 웅덩이라는 뜻이겠는데 물소리와 함께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직은 나무가 우거지지 않았는데, 봄철 물놀이와 한나절 다리품 쉬기에는 오히려 알맞겠다 싶다. 월성 마을 건너편 솔숲에도 자리를 펼 수 있다. 마을 아이는 동생과 함께 조그만 뜰그물을 들고 냇물로 들어가는데, 아이를 업은 처녀는 주전자를 들고 따라간다.
아래쪽 ‘석불사’ 표지판이 서 있는 다리 근처에서도 좋은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창선 마을 조금 위쪽 건너편의 정자는 아름답지 않으나, 조대(釣臺)와 용암대(龍巖臺)라 쓴 바위가 마주서 있는 사이로 푸른 물이 서늘하게 흐른다. 이밖에 황점과 월성 사이 청소년 수련원 위아래에도 쓸만한 골짜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 좋은 골짜기에 정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옛 맛을 풍기는 정자는 아래쪽 강선대 들머리에 있는 모암정뿐인데, 사유물인 모양인지 찻집에서 영리 목적으로 쓰고 있다.


△가볼만한 곳 - 거창박물관

경남연극제가 열리는 문화센터 옆에 거창박물관이 있다. 지역 박물관답게 거창에서 나온 유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들머리에는 김정호가 파서 새긴 대동여지도가 펼쳐져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 275호인데 1864년 만든 수정본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빙 둘러 가야에서부터 신라.백제.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모두 거창에서 난 것들이다. 안목이 모자라는 탓인지 그 뒤로 이어지는 고려 청자나 이조 백자 따위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 대신 여기서 오래 머문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서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해 금관가야가 힘을 잃은 뒤 가야연맹은 고령의 대가야가 주도한다. 대가야의 고령은 거창과 아주 가까운 데 있었다. 이 대가야가 6세기에 꺾인 뒤 거창은 서로 맞서 다투던 신라와 백제의 영토를 오락가락했을 터였다. 백제 멸망 뒤 거창읍내 건흥산 마루에 거열산성을 쌓아 근거지로 삼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간 오지면서도 땅이 너른 덕분에 토착 세력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통일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들이 많다는 것은, 호족 세력이 지역 불교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남하면 둔마리에서 발굴된 고려 고분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거창박물관 1층에 관련 유적들이 전시돼 있다. 드물게 보는 11~12세기 고분으로 동서로 무덤이 두 개 있었다.
동쪽 무덤 동쪽벽에 ‘악기를 타며 춤을 추는 천녀’ 5명의 그림이 있음을 확인했다. 설명에 따르면 정성을 들인 작품은 아니지만 선이 활달하고 형식에 매이지 않아 시원하다고 한다. 얼굴은 복스럽고 복장은 도교풍을 띤다는데 당시 호족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물관 앞뜰에 송덕비 따위가 늘어서 있다. 무쇠로 만든 ‘쇠비’가 3개나 있어 눈길을 잡아당긴다. 고을 사또가 오기 전에 미리 송덕비를 세움으로써 수탈을 줄여보려 했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가렴주구가 심했던 19세기 중반에 만든 것임에 비춰볼 때 쉽게 만들고 재활용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처럼 무쇠를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찾아가는 길

거창은 중.동부는 물론 서부 경남에서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차편도 많지 않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741-6039)에서는 20~30분마다 차를 타고 2시간 남짓 걸려 거창읍내까지 갈 수 있다. 첫차가 6시 50분이고 저녁 막차가 7시 47분까지 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256-1621)에서는 거창까지 3시간이 걸린다. 오전 7시 12분이 첫차고 이어서 9시 15분 9시 25분 11시 25분이고 오후에는 12시 53분과 2시 19분 2시 44분 3시 34분 3시 54분 다섯 번 차편이 있다. 시간에 맞추기 어려우면 5분마다 있는 진주행 버스를 타고 가서 갈아타는 게 좋겠다.
거창 읍내에서 월성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 네 번뿐이다. 오전 6시 30분과 8시, 오후 3시 30분과 7시 10분밖에 없다. 들어가는 데 30분 남짓 걸리니까, 나오는 시각은 여기에 맞춰 셈하면 되겠다.

자가용을 타고 가는 길은 마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진주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옮겨 실으면 된다. 진주에서는 바로 대전~통영 고속도로에다 올리면 된다. 함양에서 거창까지는 88고속도로가 이어준다.
한적한 국도변 풍경을 즐기려면 마산에서 진동을 벗어나 2호선을 타도 되고 남해고속도로에서 의령으로 빠져 20호선을 타도 된다. 거창까지 이어지는 3호선과는, 2호선은 진주에서, 20호선은 산청 단성에서 만난다.
거창 읍내서는 일단 수승대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12km쯤 되는 지점에서 수승대를 떨어뜨리고 줄곧 가다가 1001호 지방도를 만나면서 왼편으로 꺾어든다. 왼편으로 펼쳐지는 골짜기가 바로 월성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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