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전 국민의 눈과 귀가 TV로 쏠렸다. 지금은 퇴임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1분 동안 탄핵 결정문(선고 요지)을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에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국민들은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날 읽은 결정문 형식은 국민들의 집중력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다. 보통 법 결정문은 일반인은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법률 용어가 많다. 추론 표현과 긴 문장으로 일반인은 읽어 내려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문은 달랐다. 높임말로, 그리고 간결하게 읽은 결정문은 한번 듣고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행간에서 국민 이해를 높여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려는 헌법 재판관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에 대비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들은 재임 기간 여러 차례 회자됐다. 만연체, 앞뒤 맞지 않는 문장, 적절치 않은 단어 선택, 내용의 모호성 때문에 '박근혜 번역기'라는 말도 등장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실 행정관과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했던 강원국은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노 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에 대해 밝힌다. 몇 가지를 옮기면 "△쉽고 친근하게 쓰게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등을 노 전 대통령은 주문했다. 또한 "글이라는 것은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고 했다 한다.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 법률 용어가 난무하고 재판관들의 권위를 내세우듯 장황한 표현이 이어졌다면 국민의 눈과 귀가 20분 넘게 이번처럼 쉽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전에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과연 권위나 전문성을 대변하는 것일까. 멋있는 글이 좋은 글일까. 글 쓰는 이, 말하는 이 모두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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