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돈을 주고 만화책을 샀다. 김수정의 <둘리> 전권과 이두호의 <객주> 1, 2권을 구입하니 거의 4만원 돈이 됐다. 그래도 샀다. 일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도서보다 만화를 훨씬 더 많이 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1년에 일반 도서 9.3권에 만화는 14.8권을 읽고, 청소년은 일반도서 13.3권에 만화 24.9권을 읽는단다. 성인은 1.6배, 청소년은 1.9배만큼 일반도서보다 만화를 많이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독서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우리나라 만화가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핵심은 간단하다. 만화를 읽는 만큼 그 대가가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도서대여점’이 붐을 일으켰다. YS가 “국민이 저렴한 가격에 책을 읽도록 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서대여점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몇 백원만 들이면 간단하게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갖췄다. 평소 책을 멀리하던 사람 다수를 독서 시장에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도서대여점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나 문제는 사람들이 책을 ‘사 보는 것’이 아닌 ‘빌려 보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물론 빌려봐도 공짜는 아니니까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빌려볼 때 지불한 돈 중에 저작권자인 만화가에게 가는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만화시장은 전국 1만 4000여 대여점에 국한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어도 1만 4000부밖에는 팔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화가들이 애써서 좋은 작품을 만들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대여점이 다 사주는 것도 아니어서 최근에는 만화 한편에 3000부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만화만이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들에겐 문화를 ‘사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공짜로 보기를 좋아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데 대해 인색하기 짝이 없다. 지역예술계의 창작환경도 열악하기 짝 없다. 창작활동이 존경받기는커녕 애물단지 취급받기 일쑤다. 혼신을 쏟아 작품을 하나 만들어도 그것을 무대나 전시장에 올리려면 소위 물주를 찾아 사정사정을 해야만 한다. 심지어는 창작자가 자기 돈을 들여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지역 예술인들 중에 창작활동 그 자체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레슨이나 부업이 없이는 불안하기 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본질은 창작에 있다. 그리고 굳이 ‘예술인’라는 직함을 만든 이유는 그들의 창조성을 존중한 까닭이다. 창작활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대가를 지불하는 습관부터 키울 필요가 있다.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창작자를 위해, 창작환경의 활성화를 위해, 그리고 나 스스로의 자존심을 위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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