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는 참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농업중심사회에서 산업중심사회, 이제는 글로벌화된 정보화사회로 이행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일정 정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바로 87년 6월 항쟁을 분수령으로 우리사회는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80년대는 우리 현대사에 있어 빛나는 시기이다. 또한 우리세대가 시대와 사상을 자각한 원년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80년대의 빛남은 거기에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80년대의 우리는 시대와 사상, 세계와 사람, 투쟁과 결단을 위해 누구나가 자신의 창조력을 바치는데 아까워 하지 않았다.

세계와 사람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고귀한 청춘과 정열을 아낌없이 부은 ‘헌신성’이 함께 존재하던 시대였다.

이 시기 학생운동을 했던 세대를 흔히 ‘386세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386세대가 이끌었던 학생운동이 지난 시대와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념 지향적인 운동이었다는 점과 조직적인 활동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념과 조직이 옛날에는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높은 수준의 이념과 강고한 조직이 있었고, 87년 투쟁처럼 대중운동을 자신들의 지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의 그 모습이 지금의 모습에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386에게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만약 386 세대가 정치나 다른 분야에 진출한다면 ‘우리가 남들보다 앞세워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젊음을 바쳤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신감일까’ ‘무엇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답변하는 것만으로는 허전하다.

실제적으로 자신이 맡아야할 작은 ‘능력’과 ‘주제’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과거 운동을 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갖는 헌신성이 막연한 헌신성보다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새로운 현실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준비해야 할 것인가. 먼저 필요한 것은 과거의 활동과 생각에 대한 반성적인 사고일 것이다. 이전의 우리 운동을 지배했던 사고 방식은 길게 말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다른 나라와 사회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주의’나 ‘사상’으로 80년대를 독재와 맞서 싸웠다.

그 결과 독재정권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라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개혁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난 뒤 90년대를 거쳐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것이 변하고 바뀌었는데 오히려 우리는 과거 이념과 노선에 대하여 제대로 털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민족·계급·국가·시장 등등에 관하여 우리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현실 생활은 그렇지 않으면서 생각과 말은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과거 운동의 영광(향수)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데 인색하고 반성적인 사유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구세력이라고 한다. 우리가 수구세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상·새로운 운동·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면 과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폐쇄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개방된 자세가 필요하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재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가다듬고 도전하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가능성과 희망이 있는 세대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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