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인 경영 행태 바로 잡아야죠. 당하면요? 또 일어서면 되죠."
진주·마산MBC 통폐합 반대 언론장악 막고자 4년간 투쟁
해고·호봉 누락 재입사 고초…노조 출신 극단 대표 이력 '블랙리스트'올라 탄압 당해
"정권 횡포에 굴하지 않고 방송법 개정에 힘 보탤 것"

여기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질곡을 오롯이 견뎌낸 한 사람이 있다. 이명박 정권 땐 MBC 구성원으로서 방송 장악, 박근혜 정부 땐 극단 대표로서 '블랙리스트' 탄압을 온 몸으로 받아안은 사람. 이 탓에 많은 것을 잃었지만 강직하고 곧은 성품,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결기로 여전히 정의로운 지역 사회를 꿈꾸는 사람. 정대균 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위원장 겸 극단 현장 대표다.

"참담함의 연속이었죠. 분루를 삼키며 때를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지낸 정 전 부위원장의 소회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2010년 6월 15일 정 전 부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MBC는 김재철 사장이 이끌고 있었다. 사천 출신인 김 사장은 진주·마산MBC 통폐합 작업을 추진했다.

정대균 전 진주MBC 노조위원장·극단 현장 대표. /정대균 전 진주MBC 노조위원장

이때 정 전 부위원장은 진주MBC 노조위원장으로 통폐합 반대 투쟁 전면에 섰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김종국 진주·마산MBC 통합 사장의 찍어내리기 앞에 두 지역MBC는 MBC경남으로 통폐합되고 만다.

이후 김재철·김종국·안광한 사장 등을 거치며 MBC는 철저히 정권의 편에 서서 여론을 왜곡해왔다.

정 전 부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 MBC를 두고 "공정 방송 마인드를 지닌 상식적인 MBC 구성원 대다수가 방송 현장에 접근조차 못 하는 실정이었다"면서 "모욕과 배제라는 치졸한 수단이 MBC 경영진의 가장 손쉬운 인사 노하우로 전락한 시대"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 결과 MBC는 보도 품격이 사라지고 오로지 정권 연장 도구임을 노골화해 편향된 보도물을 쏟아내기 급급했다"며 "비상식적인 경영진 행태는 MBC에 낡은 권위주의 폐습을 낳았고, 눈치 보기와 줄서기, 불통의 악습이 자리 잡게 했다"고 한숨지었다.

이는 곧 시청자인 국민의 외면을 낳았다. 정 전 부위원장이 특히 견디기 어려웠던 건 지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는 "지역MBC를 고비용, 저효율로 인식한 경영진의 지역MBC 정리 과정은 저항하는 구성원들에게 해고와 정직을 남발하는 등 매우 폭력적이었다"며 "방송 콘텐츠 질 향상이 아닌 통합만이 목적이었기에 진주·마산 구성원 간 씻을 수 없는 반목을 낳았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옛 진주MBC 보도기능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서부경남 지역 보도 소외 현상이 더욱 악화했다"면서 "이 탓에 서부경남 인지도 1위였던 MBC는 지역민 뇌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렇게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투쟁 현장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걸고 싸웠다.

이런 그가 경영진 눈에는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정 전 부위원장은 "사측은 지난 2010년 손해배상,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고발을 남발했다"면서 "김종국 사장은 고소를 한 후 고소장을 악의적으로 언론 공개해 모욕도 줬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징계 해고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는 투쟁 끝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3년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MBC의 꼼수는 여전했다. 원직 복직이 아닌 재입사 형식으로 호봉을 낮춰 불이익 복직 발령 냈다. 사측은 해고 기간 동안 호봉을 누락했고, 퇴직금을 일방 지급했다. 원직 복직도 시켜주지 않았다.

그는 "정당한 투쟁에 따른 부당해고인데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사측 태도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 결정을 수용하기로 하고 다시 안에서 내 역할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탓에 지난 1987년 MBC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이제 입사 5년 차를 맞았다.

지난 2010년 진주MBC 노조 집행부 대량 해고에 항의하고자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정대균(맨 왼쪽) 전 진주MBC 노조위원장. /경남도민일보 DB

정 전 부위원장은 언론인이자 연극인이다. 원로 연극인 이기대 선생 권유로 극단 현장에 몸담은 이후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연극 전공도 동아리 출신도 아니라 연기보다는 기획과 경영에 힘썼다. 이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4년에는 극단 대표직을 맡았다. 대표 취임 이후 현장은 문 닫은 단관 영화관을 인수해 전용 소극장으로 꾸미게 됐다.

현장아트홀은 도내 극단이 운영 중인 소극장 중 가장 크고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 아울러 <쿵쾅쿵쾅 고물놀이터> 같은 수익형 콘텐츠 개발과 지역 사회, 정부 지원 등을 기반 삼아 단원 월급제를 시행한 도내 몇 안 되는 극단이기도 하다. 이게 바탕이 돼 경남연극제, 대한민국연극제(전국연극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 왔다. 그의 헌신으로 현장은 명실상부 도내 으뜸 극단으로 거듭났다.

한데 박근혜 정권에 들면서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인지 국가보조금 사업에서 계속 탈락한 것이다.

그는 "작품 활동도 많이 하고, 전국 단위 연극제 참여 실적도 좋은데 의아했다. 각종 경연 성적도 좋았는데 생각해봐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문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였다. "지난 2015년 8월 국고보조금 심사 위원 한 사람과 문체부와 가까운 인사로부터 우리 극단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귀띔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분들 말로는 우리 극단이 계속 심사대상에서 제외돼왔다는 것"이라면서 "참 저급한 정권의 치졸한 탄압이라 생각했다"고 당시 감정을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든 극단을, 단원을 먹여살려야 했다. 이유야 어떻든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했다. 하는 수 없이 극단 대표직을 후배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최소한 생존비를 마련하려면 국가보조금이 절실한 예술 단체 입장에서는 처참한 일이었다"며 "더욱이 단원들이 예술가로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세월호든 일본군 위안부이야기든 뭐든 하게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점에서 헌재가 '블랙리스트'를 박 대통령 탄핵 사유에 포함하지 않은 게 아쉽다. 그는 "시간을 갖고 검찰에서 조사하다보면 세월호나 블랙리스트 모두 탄핵 인용을 충분히 보충하고 남을 증거가 나오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 전 부위원장은 최근 분을 삭이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자유한국당이 김재철 전 사장을 사천·남해·하동 지역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그는 "고향인 진주MBC를 없앤 주범, MBC 사장 시절 저급한 언사와 공금 횡령 등으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 재임 당시 수많은 후배를 해고와 징계로 고통받게 한 사람이 공당의 지역위원장이 된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지역민은 김 전 사장 횡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어디서든 과거 행적에 대한 지극히 소모적인 해명을 반복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진주같이' 회원이기도 한 그는 앞으로 지역 사회에 김 전 사장 악행을 알리는 활동도 계획 중이다.

재입사자 신분. 서슬퍼런 MBC 사정에 정 전 부위원장 인터뷰는 혹 꼬투리가 돼 불이익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이를 걱정하자 그는 "당하면 또 일어서면 된다"고 답했다. "공영방송 MBC가 어느 정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를 이루려면 '방송법 개정'이 급선무고 이 과정에서 내 역할을 찾겠다"는 다짐도 했다.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 18대 직계 자손다운 선비적 기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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