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15의거 57년을 맞는 날이다. 해마다 숙연한 마음으로 이날을 맞지만 시민의 손으로 최고 권력자를 물러나게 한 올해는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57년 전 오늘 옛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분연히 맞서 일어섰으며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14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그러나 그동안 3·15의거는 4·19혁명의 일부이거나 서막으로 취급되면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4·19는 혁명으로 대우받는데 반해 3·15는 아직도 '의거'나 '시위'로 불리는 데 그치고 있다. 국립3·15민주묘지의 조성, 국가기념일 제정 등 국가적 차원의 예우가 진행된 것도 1990년대 이후였다. 실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민주 항쟁이자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정권을 무너뜨린 기폭제는 3·15의거였다. 3·15는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 민주항쟁 계보의 서막이자, 10·18, 5·18, 6·10, 그리고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 결정을 낳은 촛불혁명까지 면면한 영향력을 드리우고 있다. 3·15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후손들은 무혈혁명을 통해 정권을 내쫓을 수 있게 됐다. 후손으로서 3·15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막중한 과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3·15 정신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3·15 이후에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은 곧잘 이 교훈을 잊었고, 그 결과는 자신의 참담한 몰락이나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권은, 부정선거와 독재 등 헌정질서를 유린함으로써 영구집권을 획책하던 이승만 정권이 3·15의거로 무너진 것에서 일말의 교훈도 얻지 못했다. 그랬기에 헌법과 법률을 멋대로 위배하고 권력을 맡겨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박 전 대통령도 불명예스러운 신세로 전락했다.

'촛불혁명'이 성공한 지금 대한민국 역사는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3·15와 4·19 이후 새 정부가 수립됐지만 1년도 못 가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로 좌초되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의 잔당들도 전열을 가다듬으며 대선을 통한 재기를 모의하고 있다. 반헌법 세력이 창궐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멀리는 이승만 정권 이후 쌓인 구조적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시민의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 그것만이 3·15를 빛나게 계승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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