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다]대선 속의 지방 (1) 한국사회 지방의 현주소
보수 정권 중앙집중 정책 탓
지방 자립역량 갈수록 약화

결국 국민이 쟁취한 대선이다. 언론이 도화선을 만들고 국민이 촛불로 점화했다. 국회와 사법부가 탄핵으로 단죄해 만든 대선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나의 투표가 탄핵 사태 원인이 된 것은 아닌가? 지난번 나의 투표로 내 처지는 개선됐나? 빈곤과 실업, 한 해 1만 5000명 자살과 입시로 대표되는 살인적 경쟁 현실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나?

이번 대선에서 내 처지를 개선하는 투표를 하자는 취지에서 이 기획을 준비했다. 내 처지를 개선하는 투표는 어떤 걸까? 당연히 빈곤을, 실업을, 자살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입시 지옥을 개선하는 후보의 정책을 찾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지방 사람에게는 과제가 하나 더 얹어진다. 중앙과 수도권에 종속된 지방의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번 기획에서 대선에 반영돼야 할 지방과 경남 현안에 초점을 맞췄다.

'대선 속의 지방'에서는 한국사회 지방의 현주소와 대선에 반영돼야 할 지방분권 과제를 다룰 계획이다. 이어 '대선 속의 경남'에서는 경남의 주요 현안이 어떻게 이번 대선 과정과 공약 속에 반영돼야 하는지 각 사업·분야별로 짚어볼 예정이다. 끝으로 지방분권과 경남 현안을 대선 후보에게 묻고 답하는 '후보에게 듣는다' 편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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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기준 국토의 12%인 좁은 수도권에 대한민국 모든 것이 몰려 있다. 인구의 50%, 100대 기업 본사 95%, 전국 20대 대학 80%, 의료기관 52%가 몰려 있다.

그뿐인가. 공공청사 80%, 정부투자기관 89%, 예금 70%, 지역내 총생산액(GRDP) 49%, 총사업체 4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는 경남도 정보통계담당관실과 강준만 교수의 <지방식민지 독립선언>에서 파악한 통계다.

고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지방 사람이 중앙에 가지는 감정은 콤플렉스 수준이 아니다. 종속 수준이다. 적은 취직 기회, 낮은 보수, 정치적·문화적 소외를 호소하면서 부모나 학교나 아이에게 'in 서울'을 주입한다.

최우용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래서 "나는 한국사회의 근본 과제를 분단, 양극화, 중앙집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 과제를 해결할 길은 지방분권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진주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73학번인 성경륭 한림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 4년 6개월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냈다. <국가균형발전의 비전과 전략>, <균형사회와 분권국가의 전망> 저술 등으로 그의 지역균형발전 실천은 이어졌다. 성 교수는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사회 지방의 현주소를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 지방은 거의 불가역적인 소멸 과정에 진입하고 있다"고 압축했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중앙에 종속된 지방의 현주소를 대표적인 분야별로 나누어 말씀해 주십시오.

"정치가 대표적이죠. 중앙 정치권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행정권력 분산에도 서울에 있는 입법권력이 행정부를 통제함으로써 입법-행정 연합 지배체제가 여전히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제 측면에서는 예금과 대출액의 3분의 2, 국세 4분의 3, 대기업 본사 91%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죠. 수도권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지방은 전체 3400개 읍·면·동 40% 지역에서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수준입니다. 또, 대학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통계청은 2030년에 필요한 대학 수를 현재(386개) 56% 수준인 220개 정도로, 160개 이상 소멸할 것으로 보는데요. 대부분이 지방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를 토대로 한국사회 속 지방의 현실을 정의하신다면?

"지방자치에도 한국의 지방은 경제적·재정적 자립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실질적으로 중앙에 복속돼 의존하고 있는 거죠.

특히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 지방은 거의 불가역적인(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변하지 않는) 소멸 과정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KTX나 고속도로망·항공망 등 고속교통망과 수도권의 고등교육기관·의료기관·문화기관, 백화점 같은 고급 유통기관이 마치 빨대처럼 수도권으로 흡수를 촉진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방이 해결해야 할 과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입니까?

"제가 일했던 참여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이후 두 번의 보수정부는 수도권 우선 정책을 썼습니다. 급격한 규제 완화, 지방 이전기업에 대한 지원 축소,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 허용 같은 정책이죠. 다음 정부는 이미 무력화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정책을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인 버전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혁신도시 강화를 위한 이전기관 산하 기관 동반 이전, 혁신도시 이전기관-대학-지역산업 사이 클러스터 구축, 수도권 소재 관련 기업과 해외 기업 이전 촉진 등입니다. △지역 부흥을 위한 5대 뉴딜정책도 필요합니다. 도시재생, 농업 농촌·귀농 귀촌, 청년, 액티브시니어, 생태 등 5대 뉴딜입니다. 인구가 급감하는 지방의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국가사업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생에너지 생산단지 조성, 에너지 과소비형인 기존 주택·건축물을 에너지 원리에 맞게 개량하는 사업, 유기농 활성화, 도시형·농촌형 마을 만들기 사업 같은 게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방국가 수준의 지방분권 개헌도 추진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방 발전 측면에서 이번 대선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요?

"지방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방 소멸' '인구 소멸' 과정에 진입했습니다. 지난 두 정권의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파멸적 상황은 더해졌습니다. 이번 대선은 지방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죽일 것인지(혹은 죽도록 방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로입니다. 유권자가 지방을 살려내고자 하는 철학과 전략을 분명히 견지한 정치세력을 뽑아야 지방 회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대선 후보자에게 할 질문, 요구해야 할 공약은 무엇입니까?

"우선 △현재 지방의 경제·사회·인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지방을 살리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지역산업 육성 방안은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방과 연계한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무엇인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의 상충성과 상보성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지를 묻고, 공약에 담도록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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