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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혹은 가짜' 딜레마 빠진 유럽의 발상지

[그리스 로마 유적 유물 여행] (5)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3월 14일 화요일

지난밤 우리는 아테네 피레우스항에서 크레타섬의 가장 큰 도시 헤라클리온으로 가는 야간 크루즈를 탔습니다. 지중해를 서서히 밝히는 여명과 함께 배가 섬에 닿습니다. 크레타에서 처음 맞은 풍경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묘한 느낌입니다. 크레타에서 번영한 고대문명이 현대 서양 문명의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노스(미노아 혹은 크레타) 문명(BC 3650년경~BC 1170년경)이지요.

◇도시 같은 궁전, 궁전 같은 도시

이제 우리는 미노스 문명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합니다. BC 1600년경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궁전이 3곳이나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크노소스 궁전만 남았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헤라클리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궁전을 중심으로 사방 2㎞ 안에 8만 명이 빼곡히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과 비슷한 시대, 제주도보다 4.5배 클 뿐인 이 섬에 어떻게 이렇게 큰 도시가 번영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집트와 그리스, 지중해와 에게 해 중간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겠죠. 문명의 중계지로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가 이뤄졌을 겁니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 미노스 문명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궁전은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의 의해 발견됐다. 하지만 에번스는 정확한 고증없이 복원을 진행, 논란을 낳고 있다.

크노소스는 사실 궁전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큰 도시라고 해야 합니다.

동서로 170m, 남북으로 180m로 거의 정사각형을 이룬 이 궁전 안에 지배자와 신하들의 주거공간, 사제들이 있던 제단, 금속이나 석재 가공소, 기름 같은 생필품 저장고, 진흙판으로 된 문서를 보관하던 행정관서가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방이 1400개가 넘는답니다. 개중에는 2~3층 건물도 있고요, 심지어 5층짜리도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말이죠.

◇'올리브 나무 1500그루'로 찾은 문명의 뿌리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한 이야기에도 하인리히 슐리만이 등장합니다. 앞서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했다던 그 사람이죠. 사실 슐리만은 당시 고고학자들에게는 발굴업자나 도굴꾼 취급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교류를 잘 안 하려고 했죠. 하지만 '감이 좋았던' 슐리만은 크레타섬에서 왠지 발굴하고 싶은 땅을 발견합니다. 올리브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던 곳이었지요. 그때는 올리브 나무가 얼마나 있느냐를 기준으로 땅값을 정했답니다. 슐리만이 땅 주인과 토지 매매 흥정을 하는데, 땅 주인이 올리브 나무 500그루 값은 줘야겠다고 말하죠. 슐리만이 아무리 세어 봐도 150그루 정도밖에 없는데 말이죠. 흥정은 실패로 끝나고 슐리만은 아테네에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마침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1851~1941)가 슐리만을 만나러 옵니다.

에번스는 슐리만이 크레타에서 가져온 유물 몇 점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에번스. 바로 크레타로 향합니다. 그리고 땅 주인에게 올리브 나무 1500그루 값을 치러줄 테니 땅을 팔라고 하죠. 그리하여 3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미노스 문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에번스는 1898년부터 발굴을 시작해 35년간 크레타 섬에서 미노스 문명을 연구하죠. 그가 미노스 문명의 권위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죠.

크노소스 궁전 유적. 미노스 문명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궁전은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의 의해 발견됐다. 하지만 에번스는 정확한 고증없이 복원을 진행, 논란을 낳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못 된다고?

크노소스 궁전은 미노스 문명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 자체로 서양 문명의 시원(始原)이죠.

크레타 주 정부는 오래전부터 크노소스 궁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왜냐고요? 그게 좀 복잡합니다. 고고학자 에번스는 궁전을 발굴만 한 게 아니라 복원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원이 문제가 됩니다. 에번스가 개인적으로 한 거거든요. 무슨 욕심이었는지 그는 정확한 자료와 고증 없이 서둘러 복원을 시도합니다. 바닥을 제외하면 대부분 궁전 건축 재료가 목재였는데요. 에번스는 이걸 시멘트로 대체합니다.

물론 나무처럼 보이게끔 정교하게 하긴 했죠. 기둥을 옮기기도 하고, 색깔을 칠하기도 합니다.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고 파괴한 부분도 있다네요.

지금으로서는 그가 어디를 어떻게 바꿨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된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에번스의 상상이 상당히 가미된 크노소스 궁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에 이런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문화유산은 진정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진정성은 영어로 'authenticity'입니다.

진본성이라고도 하는데 재질이나 기법 등에서 훼손되지 않고 원래 가치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크노소스로서는 결정적인 오점입니다.

뭐, 혹시 모르지요. 진정성보다 그 가치를 더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가 올는지도.

◇복잡함, 그 훌륭한 방어

자, 이제 궁전을 둘러볼까요. 크노소스 궁전을 복원한 모형을 보면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 어느 구멍으로 나오는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적이 침입해도 왠지 우왕좌왕할 것 같네요. 그래서일 겁니다. 대부분 문명에서 발견되는 성벽이 이곳에는 없었던 이유가 말이죠. 아니면 군사적으로 아주 강력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고학자들은 크노소스 궁전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왕비가 거처하던 장소인 크노소스 궁전의 메가론

궁전은 동, 서, 남, 북으로 하나씩 출입구가 나있습니다. 당시 외지인은 모두 동쪽 출입문으로 들락거렸답니다. 이쪽 진흙 조각에서 물건이 들고나간 기록이 발견됐거든요. 외지인이 세관에 도착하면 안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면서 몸을 정화했다는군요.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겁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키가 아주 작았던 것 같습니다. 출입구도 작고, 건물 높이도 낮습니다. 그리고 측백나무를 잘라 세웠다는 건물이 기둥이 이를 증명합니다. 밑은 좁고, 위는 넓게 가분수 형태로 만들었거든요. 이른바 크레타 기둥 양식이라 부르는 겁니다. 궁전 중앙에는 큰 광장이 있어 숨통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조그만 공간들이지만, '메가론'이라 불리는 큰 방들도 더러 있습니다. 지배층이 회의를 하는 곳과 사제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좁고 위는 넓은 크레타 양식 기둥.

[참고문헌]

<그리스 미술>(나이즐 스피비, 한길아트, 2001)

<Ancient Greece>(G. Bejor, Vision, 2010)

<The palace of Knossos>(Costis Davaras, Athens Hannibal Publishing Hous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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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