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도시 외곽 등산로마다 등산객이 무척 늘었다. 이른 새벽뿐 아니라 요즘엔 아침나절이나 오후에도 등산로가 비좁을 만큼 인파가 넘쳐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겠지만 소일거리가 마땅찮아진 중장년 실업 계층이 늘어난 탓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산을 찾는다는 것은 이유야 무엇이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유익한 레저다. 산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사실이다. 잡념도 사라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차를 타고 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가다가 멈출 수도 있고, 향기로운 산의 기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걷는 일은 오감을 자극해서 사소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고 아무리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며,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아무도 찾지 않은 모퉁이에 소리 없이 돋아난 새싹까지도 모두 내 눈 속에 들어온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한 발 한 발 내 힘으로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느낌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빨리 달려서 한꺼번에 많은 산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산 하나를 제대로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걷는 날이 필요한 것이다.

산은 우리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육신을 강건하게 해주는 유익한 물질과 기를 뿜어내준다.

그러나 산을 빠져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라. 온화한 기, 건강하고 평화로운 기운 대신 독기와 노기가 가득 차 숨을 못 쉴 것 같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탄핵되어 국정이 중단 상태에 있고, 국민시청료로 운영되는 국영방송과 언론매체들은 촛불·태극기 집회 등을 연일 보도함으로써 갈등을 부추기면서 투쟁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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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온통 독가스 같은 역 피톤치드 물질만 뿜어내는 것이다. 산속에 피톤치드 같은 좋은 물질과 기가 뿜어지면 심신의 건강이 살아나듯 사회 속에도 서로서로 평화롭고 화기에 찬 기를 뿜어내면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와 증오와 다툼 대신 화합과 사랑이 스며들 것인데…. 피톤치드 없는 세상, 노기와 독기만 뿜어내는 세상이 되어가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산길을 걸어야 한다.

비록 힘없고 목소리 낮은 소수라도 산길을 걷는 계층이 있어야 그나마 이 사회가 독기에 견뎌내는 면역을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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