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핀 꽃은 다시 필 꽃에 자리 양보
나이 들수록 계속 자연의 섭리 배워야

이제 진짜 봄이 왔습니다. 산에는 '숲의 요정' 노루귀 꽃이 앙증맞게 피어납니다. 노루귀는 보송보송 돋아나는 새잎이 노루 귀를 닮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알록달록 얼레지는 잎사귀 가운데서 봉긋봉긋 솟아나는 꽃망울이 무척 인상적인 꽃입니다. 멀리서 샛노란 복수초 소식도 들려옵니다. 복수초는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꽃입니다. 노루귀, 얼레지, 복수초 모두 숲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야생화들입니다.

사람들이 보아주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우리 주변 논과 밭,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까치꽃은 광화문에 피었던 촛불 꽃을 연상시킵니다. 봄이 왔음을 알리려는 듯 무리지어 번져갑니다. 겨우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던 동백꽃도 나무 가득 피어납니다. 박새, 딱새, 노랑턱멧새, 휘파람새는 봄꽃들 피었다며 덩달아 예쁜 노래를 부릅니다.

자연의 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제 추웠던 겨울은 과거가 되었습니다. 꽃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디찬 겨울에도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머지않아 따스한 봄이 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 북풍한설 몰아치는 광장에서 수천 수백만 개의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곧 민주주의 봄이 다가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상식과 정의가 승리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꽃과 함께 봄이 오듯 촛불과 함께 탄핵의 봄이 찾아오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꽃과 나무 그리고 자연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한 번 핀 꽃은 다시 피어날 다른 새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미래만을 설계합니다.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과 치유의 꽃을 피워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꼴을 보면 자기 잇속 챙기는 데만 몰두하고 권력 유지에만 연연해하는 모양새가 많이 보입니다. 심지어 피었다 진 꽃을 다시 피우려는 듯 온갖 거짓말과 폭언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때로는 폭력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자기만 옳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필자는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를 무척 좋아합니다. 선홍색 꽃도 있고, 분홍색과 흰색 꽃도 볼 수 있습니다. 분홍 꽃과 하얀 꽃 피는 동백나무는 흔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꽃이 피든 토종 동백나무 꽃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꽃 피운 후 한 점 미련 없이 꽃잎을 통째로 툭 떨어뜨립니다. 마치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처럼 아름답게 물러납니다. 돌아보면 사람살이는 동백나무 꽃처럼 살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별하며 물러나기는 애당초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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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범부의 삶은 때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다른 꽃들처럼 구질구질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자연과 가까워져 끊임없이 자연의 섭리를 배워야 합니다. 다른 꽃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미련 없이 물러날 줄 아는 동백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미래의 열매를 맡길 줄 아는 진정한 '어르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직 대통령도 그렇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을 동백나무꽃 같이 자리매김할 줄 아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모두가 활짝 웃을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 봄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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