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기자가 만난 수협 CEO] (15) 통영 근해통발수협 김봉근 조합장

"요즘 일반 회사로 치자면, 인턴사원부터 시작해서 과장, 부장, 임원에 올랐습니다. 조합장에 출마하면 이제 그룹 최고경영자 자리에 도전하는 겁니다."

통영 근해통발수협 김봉근(56) 조합장이 2015년 3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출마 변을 대신한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산전수전, 자수성가로 압축된다. 첫 인사에서 실례인 것 같아 피하려고 해도 눈길이 가는 곳이 세 손가락만 있는 오른손이다. 치열했던 바다 생활과 상처는 김 조합장이 선장으로 있던 20년간 '무사고' 기록으로 아물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바다는 늘 시험에 들게 한다. "바다는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던 김 조합장도 사람의 배신으로 말미암은 바다의 상처에는 속수무책이다. "바다는 친근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치열한 생존 현장임은 틀림없습니다. 바닷모래 채취는 재앙입니다."

◇수협 설립 이래 최고 흑자 = 통영에는 7개 수협이 있고 업종에 따라 근해통발수협, 멍게수하식수협, 굴수하식수협, 기선권현망수협(멸치)이 있다. 장어는 통영항 일원 항·포구에서 전국 생산량의 약 80% 이상이 집하돼 전국으로 운송된다. 근해통발수협에서 국내산 바닷장어를 위판하고 꽃게는 전국 생산량의 약 40% 이상을 유통하고 있다. 1982년 근해통발어업인들의 요구로 설립돼 현재 94명 조합원이 있다. 근해어업허가어선이 있는 어업인에 조합원 자격을 준다.

김 조합장은 19살 어선원으로 시작해 선장으로, 선주로, 어업경영인으로 차근차근 모든 과정을 밟아왔다. '바다 경영은 돈보다 경험'이라는 김 조합장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어선 3척·운반선 1척을 운영하는 어업경영인이 됐다.

"풍아리 오비도 섬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배를 타고 다녔어요. 당시 통영은 수산업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어요. 무작정 배를 탔고 의욕만 앞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사고로 한동안 배를 안 탔죠. 하지만, 불편한 손으로 육지생활도 쉽지 않았어요. 다시 배를 타게 됐을 때 선장이 돼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선장이 되니 선주가 돼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30년을 쉼 없이 달렸어요. 뛰면서도 어업인들 손을 잡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많은 선장을 배출했고 그들이 있어 현재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현재 그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조합장은 '장어 통조림' 사업으로 업계에서 주목 받은 바 있다.

김 조합장은 수협 이사를 포함해 장어통발선주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꾸준히 어업인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했다. 취임 당시 김 조합장은 국내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수협을 중심으로 근해통발 어업인이 노력으로 이룬 장어 어가 상승에 편승해 연안통발 등 많은 타업종 어업인이 장어잡이 어업으로 전환했다. 과잉 생산으로 어가 하락은 물론 선원 수급과 조업지 마찰을 빚고 있었다. 수협의 급속한 성장에 정착화되지 못한 사업이 많았고 안정화가 절실했다. 김 조합장은 2년 동안 조합 재정 건실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지난해 근해통발수협은 설립 이래 최고 흑자 경영 성과를 냈다.

"수협 확장 과정에서 그간 경제사업 손실이 컸고, 저는 손실 최소화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냉동공장 활성화와 유류·로프·미끼 판매 등 구매·이용 사업에서 눈에 띄는 수치 차이를 냈습니다. 가공공장은 지난해 여전히 마이너스 실적이지만 예년과 비교해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직원들의 자신감입니다. 고된 업무 뒤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보람과 운영 요령으로 올해 역시 최고 흑자 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김 조합장하면 '장어 통조림'으로 대변할 만큼 이 사업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계절 잡히는 바닷장어는 여름 이후 소비가 줄어들면서 생식 외에 주로 냉동 형태로 보관됐다. 또 냉동 상태에서 대부분 일본 등지로 수출했다. 이를 어민과 대기업이 손잡고 제품화하면서 유통과 소비 진작, 보관 등에 획기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장어 재고가 없어 현재는 생산을 중단한 상태지만 올 추석에 맞춰 새 상품 개발과 함께 수협에서 홈쇼핑 직접 운영안도 연구하고 있다.

◇"바다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 통영 수협은 남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바닷모래 채취 관련 누구보다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는 건설용 모래 확보를 위해 지난 2001년 남해 EEZ 모래 채취를 허용했다. 2008년 8월에는 남해 EEZ 내 1개 채취 단지를 지정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남해 EEZ에서 퍼낸 모래는 6236만 ㎥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63빌딩 95개를 지을 양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바다는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던 김 조합장은 바닷모래 채취는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어민들 순진함도 한 몫 했다는 자책도 나온다.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활용한다기에 허용한 것이 지금 사태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근해통발수협 위판량도 2013년 1709t(톤), 2014년 1413t, 2015년 1209t으로 매년 줄고 있다. 경영에 자신감을 보이는 김 조합장도 변화하는 바다 환경에는 속수무책이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 정부가 부산 신항만 건설을 위해 바닷모래를 채취한다고 할 때 국가사업이라고 하기에 어민들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곧바로 민수용(민간 건설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바다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됐습니다. 어민들도 이에 지난 10여 년간 사실상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와 어획량 감소를 되짚어보니 모래 채취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았죠.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게 어업인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내년 남해 EEZ 모래 채취 추가 연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김 조합장은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김 조합장은 구매, 위탁, 보관, 처리저장시설 운영, 가공, 유통, 해외시장 개척 등은 조합장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바다의 능력이다.

"수협은 바다 정화 활동, 종묘 방류 등 다음 세대까지도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산 하나를 깎아 없앴는데 산이 저절로 솟아나나요?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다는 제 노력에 배신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바다가 배신하기 전에, 수산업 재앙이 닥치기 전에 모래 채취 연장은 중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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