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헌재가 판결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개념은 '대의민주주의'이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함으로써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비선실세의 사익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탄핵 인용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겨우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아니었으면 헌재의 탄핵 결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선 투표용지를 찍었던 시민들 손에 촛불이 들린 것이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와 국민 주권의 원리를 생생히 입증해 주었다.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탄핵 결정은 헌재 스스로도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촛불의 위엄을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촛불 시위에서 국회 탄핵소추와 헌재 판결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옛 마산 시민들이 주역인 3·15의거와 10·18부마항쟁이 바꾼 역사와 여러모로 견줄 수 있다. 모두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현직 대통령들을 임기 중에 몰락하게 했다. 그러나 앞의 두 경우는 집권자의 통치가 종식되기까지 국민들이 소중한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런 점에서 평화롭게 최종적으로 법리를 통해 현직 대통령을 해임한 3월 10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30년 전으로 퇴보하는 것을 보며 상실감이 컸던 국민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국민의 저력을 확인해 준 것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맘대로 유린하다 그 대가를 치른 아버지의 교훈을 얻기는커녕 그대로 따르려다 똑같은 종말을 맞게 된 것은 역사의 무서움을 깨닫게 한다. 그만큼 국민의 뜻이 매서운 것이다. 4년간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봄꽃이 피고 있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대통령이 되라는 것, 차기 집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준엄한 명제를 심어준 것이 촛불을 따른 헌재 판결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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