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만렙 후 더 강한 몬스터 즐비
'국민성찰' 아이템 장착해 퀘스트 수행

'게임은 만렙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다. '만렙', 즉 레벨을 끝까지 다 올렸으면 게임 끝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레벨을 올리는 것은 게임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필요한 학습과정이다.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캐릭터 스킬의 용도와 다양한 몬스터를 대적할 때 효과적인 방법들을 익히게 된다. 만렙이 됐다는 것은 학교로 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과 유사하다. 본격적인 공부,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께,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주문이 발표되면서 피청구인 박근혜가 파면됐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의 성과가 실현됐다. 이제 60일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촛불의 게임'은 끝이 난 걸까?

'촛불의 게임'에서 박근혜는 메인 퀘스트의 보스 몬스터에 지나지 않다. 우리 시민이 수행해야 할 퀘스트, 임무는 아직도 많다. 박근혜 못지 않거나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퀘스트 중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것이 있다. 줄임말로 '연퀘'라고 한다. 하나의 퀘스트를 완수하고 나면 다음 퀘스트가 주어지고, 이렇게 일련의 퀘스트를 순서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 퀘스트'를 완수해야만 열리는 퀘스트가 있다. 바로 조기 대선 퀘스트다. 차기 대선 퀘스트를 잘 수행하려면 필수 아이템을 장착해야 한다.

'국민 성찰'이라는 아이템이다. 지난 2012년 12월 19일,대선 투표참여자 가운데 51.6%가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그때는 좋은 사람인줄 알고 뽑았는데, 이렇게까지 나쁜 대통령일 줄 몰랐다'는 정도의 성찰로는 어림없다. 다음 대통령은 정말 잘 뽑아야 한다. 파탄지경의 경제, 무너진 민주주의, 만신창이가 된 법치주의,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뒤로 후퇴한 10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대선 퀘스트를 잘 완수하게 되면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여러 퀘스트들이 동시에 열리게 된다. 먼저 사드 퀘스트가 열린다.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도무지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할 것처럼 안 보이는 사드를 배치할지 철회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배치하기로 결정한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미 시작된 중국의 경제보복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 한류가 금지되고, 관광객의 숫자가 줄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영업장들이 문을 닫는 수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고 강해질 것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비 경쟁도 심해질 것이고,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질 것이다. 안보를 위해 배치한 사드 때문에 오히려 안보가 불안해질 수 있다. 물론 얻는 것도 있다. 미국의 쇄국정책을 천명한 트럼프 정권 하의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것이다. 게다가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난리를 치는 일본의 아베 정권과도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차기 정부의 의지에 따라 보상과 리스크는 달라질 것이다.

사법 퀘스트가 열린다. 이미 구속된 최순실과 이재용을 비롯한 농단 주역들, 그리고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공정한 사법처리를 수행해야 한다. 검찰 내부에 깊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풀기 어려운 퀘스트다. 어쩌면 몬스터를 이용해 몬스터를 처치하는 복잡한 방식의 퀘스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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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월호 퀘스트가 열린다. 박근혜가 파면된 뒤에도 아직 청와대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검찰과 특검이 수개월 동안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한 '세월호 7시간' 퀘스트. 조사위원회를 꾸려 1년 동안 활동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방해로 뭐 하나 뚜렷하게 밝혀낸 것 없던 퀘스트. 아직도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고 바닷속에 침몰해 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인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퀘스트가 있다. 할 일이 참 많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에서 '이런 게 나라지!'라고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 것으로 만렙이 되었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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