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엄기호 지음
사회학자, 분노 가득찬 일상 분석
개인 잘못 아닌 구조적 문제 원인
"왕만 새로 뽑는다고 해결 안돼"

그렇다. 우리는 분명히 화가 나 있다.

변화에 대한 갈망과 함께 무슨 노력을 해도 이 사회가, 우리 삶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은 무기력과 분노로 교차한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저자 엄기호 씨.

그는 이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 "싸그리 망해버려라"를 꼽았다.

여기에는 남녀도 노소도 지역의 차이도 없었단다. 싹 다 망하는 것만이 이 사회에서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평함이라고 말한 청년의 분노를 전한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구의역 사고, 강남역 살인 사건,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이 정부는 멀쩡히 살아 있고 권력을 행사하는데 어떻게 배운 것이 없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이 사회의 비극이 있다. 이 정부는 사실 배운 것이 있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배우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배워버렸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필연이 아니라 우연으로, 연결되지 않는 개별적 사건으로, 국가적 재난이 아니라 개인적 불행으로 개별화하더라도 끄떡없다는 걸 배웠다. 가장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버린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다."(155쪽)

저자는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실체와 과격하지만 역사 자체를'리셋'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풀어놓았다.

혐오와 리셋의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는지를 날카롭고 명쾌하게 분석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상태이며, 그 분노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게 하는지, 어떤 태도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1부와 2부에 걸쳐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다시 '사회'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담는다.

세상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기에 혁명도, 진보라는 말도 아닌 '리셋'이란 과격한 말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저자는 여전히 역사의 힘을 믿으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독려한다.

그리고 에필로그 '리셋 너머 평등과 민주주의'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여기다. 우리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투표소에 표를 찍으러 갈 때만 '동료 시민'인 것이 아니다. 대의제 앞에서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그 너머로 밀어붙여야 한다. 왕을 뽑고 그 왕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뒤 다시 삶의 자리에서는 노예로 내려오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왕의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왕의 부재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212쪽)

228쪽, 창비,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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