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리·신고리 원전은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다. 사고가 나면 재앙이 되는 핵발전소를 이처럼 밀집해서 건설한 것도 위험천만한 노릇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지역 반경 30㎞ 이내에 340만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는 것과 일단 유사시 대피 등 재난 대비가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연구소와 부산환경운동연합이 8일 발표한 고리원전의 방사능 유출사고 대피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20㎞를 벗어나는 데 22시간이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정체 등도 한몫하겠지만 이 정도면 수많은 사람이 피폭될 수밖에 없다. 고리원전에서 90㎞ 떨어진 고성까지 방사능 오염 물질이 도달하는 시간이 하루도 안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하루가 지나기 전에 경남 전체와 대구·경북의 거의 전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된다는 것이고 적어도 1000만이 넘는 인구가 피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났을 때 거의 국가 전체가 멸망할 정도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도 그동안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나 광역자치단체 등의 대비 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과 같은 시뮬레이션 조사는 원전 건설과 함께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미리 최소한 조기경보시스템 정도는 구축이 되어 있어야 했다. 위험천만한 것을 머리에 인 형국임에도 주민의 반발과 우려를 무시하고 원자력의 필요성을 고집하며 재가동과 신규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묻고 싶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포기한 채 원자력 망령에 언제까지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값싼 원자력 효용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비상도로 등 원자력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만드는 것과 함께 노후 원자력 중지와 신규 건설계획을 취소하는 특단의 결정이 있길 바란다. 정부는 전력 수급 불안을 들먹이며 원전 건설 당위성을 국민에게 협박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불가피하다고 해도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은 국가 존립의 당위성을 없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원자력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 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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