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 큰 울림, 저금통 끼끼의 모험]세 번째 이야기-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
안산 찾은 끼끼, 기억교실서 마주한 세월호
10개 반과 교무실…따뜻함·먹먹함 교차
수많은 작은 마음 '삶의 의미'알려

지난 1월 31일 창원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고동성(44) 씨가 좋은 곳에 기부해 달라며 경남도민일보에 토끼 모양 저금통을 성금으로 맡겼습니다. 고 씨는 원래 이 저금통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주고 싶었지만 생업이 바빠 그러지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러면 제가 직접 팽목항 유가족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금통을 데리고 세월호가 향하던 제주도도 가고, 단원고가 있는 안산도 가보자고 생각하면서 저금통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저금통에다 끼끼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말이죠.

 

 

창원에서 탄 시외버스가 안산에 도착한 건 지난 3일 새벽 5시. 예상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해가 뜨기 전이라 춥더군요.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요. 날이 밝을 때까지 터미널 의자에 앉아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도 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아이들이 쓰던 교실 그대로 보존 중인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

 

 

 

엄청나게 피곤한데, 자기는 불편하고 해서 휴대전화 인터넷 검색으로 안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경기도 안산시는 상록구, 단원구 이렇게 구가 두 개 있네요. 단원구에 단원고가 있고요. 단원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유명한 화가 단원 김홍도(1745~?)의 호에서 가져왔습니다. 김홍도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승 강세황(1713~1791)에게 그림을 배운 곳이 바로 안산입니다. 특히 안산 단원구는 단원이 지닌 상징성을 활용해 문화예술을 강조합니다.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경기도미술관 등 덩치 큰 문화시설이 모두 단원구에 있습니다.

안산에 와서 가장 먼저 갈 곳은 아무래도 '단원고 416기억교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원고는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들이 쓰던 교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2년 동안 신입생을 받으면서 학생 수가 원래대로 돌아가 학교 쪽에서 공간 부족과 교육 환경 조성 문제를 제기합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을 제안합니다. 유가족들로서는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정확하게는 8월 20, 21일 유품 이송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14명 중 11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담임교사들의 빈자리.

 

 

 

안산교육지원청은 안산버스터미널에서 지하철로 1구간 거리에 있습니다. 거리를 걸으며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뜻밖에 안산에서는 노란 리본 같은 세월호 상징물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무심한 듯 일상생활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안산교육지원청에 가까워지자 가로등에 작고 노란 세월호 현수막들이 걸려 있더군요. '단원고 416기억교실'이란 조그만 도로 표지판이 보입니다. 기억교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교육청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별관에 붙은 커다란 기억교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방명록에 작은 저금통 끼끼라고 적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방문객은 저와 끼끼뿐입니다.

교육청 별관은 그리 크지 않은 2층 건물입니다. 1층에 2학년 1반에서 4반 교실이, 2층에 5반에서 10반 교실과 교무실이 있습니다. 교실이나 복도가 작다고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이전하면서 공간에 맞춰 줄인 것 같습니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교실이 2학년 4반입니다.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교실입니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바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거든요. 모두 아이들이 쓰던 것이라 생각하니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사물함 하나 소중해 보이지 않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진 사진 속 아이들이 참 예쁩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았겠지요. 교실 여기저기 재잘거렸을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저마다 책상에는 유족들이, 친구들이 두고 간 편지와 선물들로 가득합니다. '잘 지내니', '밥은 먹었니'라고 시작하는 편지들에는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대부분 상냥하고 밝은 문체지만, 글을 써내려 가면서 느꼈을 슬픔을 상상해봅니다. 아이들 이름이 적힌 방명록도 한 권씩 놓여 있습니다. 학교 후배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때에 찾아와 적어 놓고 간 글들이 많습니다. 지루한 수학시간 이야기도 하고, 봄이 다시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몇 년이 지나도 2014년 그 모습 그대로인 언니 오빠들에게 말입니다.

 

 

기억교실에서 유난히 눈길이 많이 간 곳은 선생님들의 빈자리입니다. 그동안 세월호 하면 학생들만 떠올렸는데, 단원고 선생님들도 14명 중 11명이 희생됐습니다. 교실 앞 교탁에도 선생님들의 자리가 있었지만, 2학년 교무실에 가지런하게 비어 있는 책상과 의자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책상 위에는 제자들이 남긴 보고 싶다는 쪽지가 가득합니다. 강민규 교감 선생님의 자리도 마련돼 있더군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내 몸뚱아리를 불살라 침몰지역에 뿌려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분입니다. 선생님이 괴로워하신 그 '도리'를 흉내라도 낼 줄 아는 이가 정치를 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씁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억교실에는 수많은 작은 마음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작은 마음들은 슬퍼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모두 저마다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겁니다. 각자 삶을 제대로 잘 살아내는 것이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우리들의 도리가 아닐까. 기억교실 건물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이름들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

...

꽃들이 피던 날 난 지고 있었지만

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

...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루시드폴 '아직, 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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